곡절 많은 인생
진정한 화합, 화쟁의 시작은…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자재암


곡절 많은 1,300년, 자재암 가는 길
곡절 많은 인생이라 기도할 것이 끊임없이 샘솟는 분이라면, 1,300년 동안 수많은 곡절을 겪으며 생과 멸을 느껴온 암자 – 소요산 자재암을 찾아가보라 권하고 싶다. 신라 무열왕 654년에 원효 스님이 창건한 자재암은 원효 스님이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고 아들 설총을 기르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사찰이다. 사찰이 생긴 후 약 500년쯤은 중창을 거듭하며 가람을 이루고 멋지게 유지했다. 하지만 1153년 고려 의종 때 화재로 사찰이 소실되면서 대웅전과 요사채만 복구해 폐사지와 다름없이 명맥만 이어온 세월이 어림잡아 700여 년이나 된다. 지금은 도로도 잘 나고, 길도 편하지만 예전엔 깊은 산중에 있었을 테니 폐사지처럼 사찰의 면모만 띠고 있었던 모양이다. 1872년 조선 후기, 원공 스님과 지암 스님이 중창하고 잠시 영원사(靈源寺)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30여 년 만에(1909) 또 사찰이 화재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50여 년이 또 흘렀다. 지금에 이르는 자재암 대웅전은 1961년에 조성되었다. 도량이 어느 정도 사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0년대였다. 천년 고찰에도 인생이 있다면, 참… 곡절 많은 인생이다.
하지만 자재암은 그 숱한 세월 기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불법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기도 영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버릴 것이 많아, 마음이 깨어난다 – 소요산 자재암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사라진다”
(心生卽 種種法生 心滅卽 種種法滅)
- 원효대사의 「오도송」 중에서
경기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소요산 계곡물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자재암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 가까이에는 원효 스님의 그녀, 요석 공주의 별궁지가 남아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떤 것에도 걸림 없는 ‘무애자재인(無碍自在人)’을 보여준 원효 스님을 떠올리다 보면 닿는 곳이 금강문이다.
금강문에서 매월당 김시습의 문장을 만난다.
“불법의 문 안으로 들어오려면 아는 체하는 분별심을 버려라” (入此門內莫存知解)
원효 스님과 매월당 김시습은 통하는 것이 있다. 무엇을 바라며 기도를 하러 가는 길이니, 무엇을 내려놓아야 손에 쥐고 내려오지 않겠는가. 두 분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멸하며, 분별심을 버리려 걷다 보면, 속리교를 만난다. 속세를 떼어놓는 다리 – 속리교를 건너며 속세도 내려놓는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왜 이리 버려야 할 것이 많은가.
계단을 걸어 올라 해탈문을 만나면 원효대에 오를 수 있다. 원효 스님은 이곳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던 찰나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절 마당에 이르면 대웅전이 보인다. 곡절 많은 생멸을 거친 자재암에 거대한 영웅이 계신 전각. 이곳에는 조선 시대 간행된 ‘반야심경 해석서’가 보물로 모셔져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소요산 자재암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 _ 보물 제1211호). 그런 대웅전에서 불보살님들께 절을 하고 나면, 원효 스님 발끝도 못 따라가겠지만 조금은 마음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원효 스님의 ‘화쟁’은 내 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재암 어디에서든 무애자재의 삼매에 빠진 순간을 조금은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도 온 세상이 청량해지는 듯한 ‘원효 폭포’, 원효 스님이 고행 수도했다는 ‘원효굴’, 1,300년 전 원효 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자리에 지어진 이후 ‘영험한 나한 기도처’로 유명해진 ‘자재암 나한전’ 등, 자재암 곳곳은 자유로운 수행 공간이자, 명상처이며, 기도처가 된다. 특히 나한전은 천연 동굴 안에 16나한상과 천 불이 조성되어 있어, 굴 안에 들어서기만 해도 불보살님들의 가피가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진정한 화해와 화합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던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의 시작은 자재암에 처음 들어설 때부터 계속 마음을 내려놓고, 분별을 버리게 했던 그곳에 있는 것 아닐까. 스스로 가둔 감옥이 뭔지 생각하고, 그곳에서 탈출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으면 화해와 화합은 따라오는 것. 그럼 그 시작은 언제일까.
아마도 ‘기도를 해야겠다, 기도하러 가야겠다’ 마음먹는 그 순간, 화쟁은 시작되는 것 아닐까.
단, 그 마음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바른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 동두천시 소요산 자재암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 2910번길 145
글|정진희
방송작가, KBS <다큐온>, <다큐공감>, <체인지업 도시탈출>, EBS <요리비전>, <하나뿐인 지구>, <희망풍경>, MBC <다큐프라임>, JTBC <다큐플러스> 등에서 일했고,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을 출간했다.
사진|마인드풀
곡절 많은 인생
진정한 화합, 화쟁의 시작은…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산 자재암
곡절 많은 1,300년, 자재암 가는 길
곡절 많은 인생이라 기도할 것이 끊임없이 샘솟는 분이라면, 1,300년 동안 수많은 곡절을 겪으며 생과 멸을 느껴온 암자 – 소요산 자재암을 찾아가보라 권하고 싶다. 신라 무열왕 654년에 원효 스님이 창건한 자재암은 원효 스님이 요석 공주와 인연을 맺고 아들 설총을 기르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사찰이다. 사찰이 생긴 후 약 500년쯤은 중창을 거듭하며 가람을 이루고 멋지게 유지했다. 하지만 1153년 고려 의종 때 화재로 사찰이 소실되면서 대웅전과 요사채만 복구해 폐사지와 다름없이 명맥만 이어온 세월이 어림잡아 700여 년이나 된다. 지금은 도로도 잘 나고, 길도 편하지만 예전엔 깊은 산중에 있었을 테니 폐사지처럼 사찰의 면모만 띠고 있었던 모양이다. 1872년 조선 후기, 원공 스님과 지암 스님이 중창하고 잠시 영원사(靈源寺)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30여 년 만에(1909) 또 사찰이 화재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50여 년이 또 흘렀다. 지금에 이르는 자재암 대웅전은 1961년에 조성되었다. 도량이 어느 정도 사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80년대였다. 천년 고찰에도 인생이 있다면, 참… 곡절 많은 인생이다.
하지만 자재암은 그 숱한 세월 기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불법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기도 영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버릴 것이 많아, 마음이 깨어난다 – 소요산 자재암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사라진다”
(心生卽 種種法生 心滅卽 種種法滅)
- 원효대사의 「오도송」 중에서
경기도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소요산 계곡물을 따라 오르다 보면 자재암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 가까이에는 원효 스님의 그녀, 요석 공주의 별궁지가 남아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떤 것에도 걸림 없는 ‘무애자재인(無碍自在人)’을 보여준 원효 스님을 떠올리다 보면 닿는 곳이 금강문이다.
금강문에서 매월당 김시습의 문장을 만난다.
“불법의 문 안으로 들어오려면 아는 체하는 분별심을 버려라” (入此門內莫存知解)
원효 스님과 매월당 김시습은 통하는 것이 있다. 무엇을 바라며 기도를 하러 가는 길이니, 무엇을 내려놓아야 손에 쥐고 내려오지 않겠는가. 두 분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멸하며, 분별심을 버리려 걷다 보면, 속리교를 만난다. 속세를 떼어놓는 다리 – 속리교를 건너며 속세도 내려놓는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왜 이리 버려야 할 것이 많은가.
계단을 걸어 올라 해탈문을 만나면 원효대에 오를 수 있다. 원효 스님은 이곳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던 찰나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절 마당에 이르면 대웅전이 보인다. 곡절 많은 생멸을 거친 자재암에 거대한 영웅이 계신 전각. 이곳에는 조선 시대 간행된 ‘반야심경 해석서’가 보물로 모셔져 그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소요산 자재암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 _ 보물 제1211호). 그런 대웅전에서 불보살님들께 절을 하고 나면, 원효 스님 발끝도 못 따라가겠지만 조금은 마음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원효 스님의 ‘화쟁’은 내 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재암 어디에서든 무애자재의 삼매에 빠진 순간을 조금은 떠올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도 온 세상이 청량해지는 듯한 ‘원효 폭포’, 원효 스님이 고행 수도했다는 ‘원효굴’, 1,300년 전 원효 스님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자리에 지어진 이후 ‘영험한 나한 기도처’로 유명해진 ‘자재암 나한전’ 등, 자재암 곳곳은 자유로운 수행 공간이자, 명상처이며, 기도처가 된다. 특히 나한전은 천연 동굴 안에 16나한상과 천 불이 조성되어 있어, 굴 안에 들어서기만 해도 불보살님들의 가피가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진정한 화해와 화합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던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의 시작은 자재암에 처음 들어설 때부터 계속 마음을 내려놓고, 분별을 버리게 했던 그곳에 있는 것 아닐까. 스스로 가둔 감옥이 뭔지 생각하고, 그곳에서 탈출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으면 화해와 화합은 따라오는 것. 그럼 그 시작은 언제일까.
아마도 ‘기도를 해야겠다, 기도하러 가야겠다’ 마음먹는 그 순간, 화쟁은 시작되는 것 아닐까.
단, 그 마음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바른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 동두천시 소요산 자재암 경기도 동두천시 평화로 2910번길 145
글|정진희
방송작가, KBS <다큐온>, <다큐공감>, <체인지업 도시탈출>, EBS <요리비전>, <하나뿐인 지구>, <희망풍경>, MBC <다큐프라임>, JTBC <다큐플러스> 등에서 일했고,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을 출간했다.
사진|마인드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