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계사,
삼각산 숲과 한 몸 이룬
세계인의 ‘아란야’
화계사와 삼각산 숲
글/사진 은적 작가
미륵전 앞에서 본 화계사 도량. 아침볕에 숲과 함께 막 깨어난 모습이다.화계사 종각에서 보화루(대방)로 오르는 계단 위의 장엄 등과 소나무
숭산 스님의 가르침 ‘오직 모를 뿐!’, 그 물음의 거처 화계사
절은 출리(出離)의 공간입니다. 세속과의 경계는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은 말 그대로 한 줄로 선 기둥 위에 지붕만 세웠을 뿐 ‘문’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무경계’의 경계인 것이지요.
『율장』 「대품」에 불교 역사상 최초의 절 ‘죽림정사’가 세워진 내력이 밝혀져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장소에서 지내셔야 할까?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고, 오고 가기에 편하며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뵙기 좋고, 낮에는 지나치게 붐비지 않고 밤에는 소음이 없으며, 인적 드물고 혼자 지내기 좋고 명상하기에 적절한 곳. 대나무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대나무 숲을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머무는 승원으로 바쳐야겠다.
숲으로 둘러싸인 화계사 삼성각의 뒷모습. 소나무 한 그루가 산신인 양하다
죽림정사 같은 수행자의 주거 공간을 범어로 ‘위하라(Vihāra)’라고 합니다. 위하라가 만들어지기 전 출가 수행자들이 머무는 장소는 ‘아란야(āranya)’였습니다. 한자로 음역해 아란야(阿蘭若) 줄여서 ‘난야(蘭若)’라고 합니다. 뜻으로 옮긴 말은 ‘원리처(遠離處)·적정처(寂靜處)·공한처(空閑處)·의락처(意樂處)·무쟁처(無諍處)’입니다.
우리의 ‘절’에 정확히 대응하는 범어는 없습니다. ‘아란야’와 ‘위하라’가 꽃받침과 꽃잎처럼 만난 곳이라고 해야겠지요. 굳이 따지자면 ‘위하라’는 건물, ‘아란야’는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절’의 본질적 존재 의미에 부합하는 말은 ‘아란야’가 아닐까 합니다.
삼각산 화계사. 삼각산(북한산) 동쪽 자락이 세간과 거의 맞닿은 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1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습니다. 일주문에서 절 마당까지는 100m 남짓 거리, 일주문을 나서면 화계중학교와 주택입니다. 그런데도 절 마당에만 들면 깊은 산속의 숲속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화계사 마당에서 실여울 같은 오락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지나면 북한산 숲속입니다. 도량의 확장이라고 봐야겠지요. 이 숲으로 북한산 둘레길이 지나갑니다. 화계사에서 천천히 걸어도 30분 정도면 ‘구름전망대’입니다. 도봉산, 용마산, 아차산과 그 언저리의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화계사를 에워싼 북한산 안의 사찰림은 29만3,800㎡(약 8만9,000평)입니다. 화계사로 하여 북한산 동쪽 자락은 ‘아란야’, 우리 모두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1522년(중종 17)에 창건된 화계사는 큰 절이 아닙니다. 대적광전(1991년 조성)을 빼면 전각의 규모도 작습니다. 하지만 숭산 스님의 원력으로 1990년 초반 국제선원이 설립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수행자를 불러들인 국제적인 절이 되었습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오직 모를 뿐!’ 이 한마디였습니다. 인생의 비의를 해득하는 길도 이 물음 속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물음의 거처가 아란야입니다. 화계사는 북한산 숲과 한 몸을 이룬 세계인의 아란야입니다.
화계사,
삼각산 숲과 한 몸 이룬
세계인의 ‘아란야’
화계사와 삼각산 숲
글/사진 은적 작가
미륵전 앞에서 본 화계사 도량. 아침볕에 숲과 함께 막 깨어난 모습이다.화계사 종각에서 보화루(대방)로 오르는 계단 위의 장엄 등과 소나무
숭산 스님의 가르침 ‘오직 모를 뿐!’, 그 물음의 거처 화계사
절은 출리(出離)의 공간입니다. 세속과의 경계는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은 말 그대로 한 줄로 선 기둥 위에 지붕만 세웠을 뿐 ‘문’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무경계’의 경계인 것이지요.
『율장』 「대품」에 불교 역사상 최초의 절 ‘죽림정사’가 세워진 내력이 밝혀져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생각했다. 부처님께서는 어떤 장소에서 지내셔야 할까?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고, 오고 가기에 편하며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뵙기 좋고, 낮에는 지나치게 붐비지 않고 밤에는 소음이 없으며, 인적 드물고 혼자 지내기 좋고 명상하기에 적절한 곳. 대나무 숲이 바로 그런 곳이다.
대나무 숲을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머무는 승원으로 바쳐야겠다.
숲으로 둘러싸인 화계사 삼성각의 뒷모습. 소나무 한 그루가 산신인 양하다
죽림정사 같은 수행자의 주거 공간을 범어로 ‘위하라(Vihāra)’라고 합니다. 위하라가 만들어지기 전 출가 수행자들이 머무는 장소는 ‘아란야(āranya)’였습니다. 한자로 음역해 아란야(阿蘭若) 줄여서 ‘난야(蘭若)’라고 합니다. 뜻으로 옮긴 말은 ‘원리처(遠離處)·적정처(寂靜處)·공한처(空閑處)·의락처(意樂處)·무쟁처(無諍處)’입니다.
우리의 ‘절’에 정확히 대응하는 범어는 없습니다. ‘아란야’와 ‘위하라’가 꽃받침과 꽃잎처럼 만난 곳이라고 해야겠지요. 굳이 따지자면 ‘위하라’는 건물, ‘아란야’는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절’의 본질적 존재 의미에 부합하는 말은 ‘아란야’가 아닐까 합니다.
삼각산 화계사. 삼각산(북한산) 동쪽 자락이 세간과 거의 맞닿은 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1시간 안팎이면 갈 수 있습니다. 일주문에서 절 마당까지는 100m 남짓 거리, 일주문을 나서면 화계중학교와 주택입니다. 그런데도 절 마당에만 들면 깊은 산속의 숲속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화계사 마당에서 실여울 같은 오락천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지나면 북한산 숲속입니다. 도량의 확장이라고 봐야겠지요. 이 숲으로 북한산 둘레길이 지나갑니다. 화계사에서 천천히 걸어도 30분 정도면 ‘구름전망대’입니다. 도봉산, 용마산, 아차산과 그 언저리의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화계사를 에워싼 북한산 안의 사찰림은 29만3,800㎡(약 8만9,000평)입니다. 화계사로 하여 북한산 동쪽 자락은 ‘아란야’, 우리 모두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1522년(중종 17)에 창건된 화계사는 큰 절이 아닙니다. 대적광전(1991년 조성)을 빼면 전각의 규모도 작습니다. 하지만 숭산 스님의 원력으로 1990년 초반 국제선원이 설립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수행자를 불러들인 국제적인 절이 되었습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은 ‘오직 모를 뿐!’ 이 한마디였습니다. 인생의 비의를 해득하는 길도 이 물음 속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물음의 거처가 아란야입니다. 화계사는 북한산 숲과 한 몸을 이룬 세계인의 아란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