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두 가지 보물이 생겨난 사르나트 | 부처님 4대 성지 순례

사르나트,
중도 대선언

녹야원 유적지 전경

불교의 4대 성지는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신 곳,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신 곳, 반열반(般涅槃, parinirvāna)하신 곳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이며, 이 4대 성지에 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라고 직접 말씀해두신 것이 『전법륜경』에 전해지고 있다.

부처님이 다섯 비구들과 재회해 최초의 설법을 한 사르나트
바라나시의 외곽에 자리 잡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사르나트는 부처님께서 다섯 비구들과 재회해 최초의 설법을 하신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평화가 가득하고, 고요하고, 느긋한 여유가 충만하고, 아늑하고 근심 걱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르나트는 불교의 중요 성지가 되기 이전부터 수행자들이 모여들어 정진하던 곳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히말라야의 고행자들이 신통으로 하늘을 날아 오르내리던 정거장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를 현자라는 의미의 이시(isi)와 날다, 내리다는 의미의 파타나(patana)를 붙여 이시파타나(isipatana)라고 하고, 5세기의 구법승 법현 스님은 이러한 의미를 살려 선인녹원정사(仙人鹿苑精社)라고 번역했다.

사르나트에 가면 영불탑, 사르나트 박물관, 녹야원 유적지를 방문하게 된다. 영불탑은 부처님과 다섯 비구가 만난 곳에 세워진 기념탑이다. 박물관은 녹야원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다.

박물관에는 아소카왕 석주의 주두(柱頭, 기둥머리)가 소장되어 있다. 높이 210cm의 주두에는 네 마리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맹수의 제왕 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눈매, 미소를 짓고 있는 입, 네 마리 사자가 딛고 있는 둥근 정판(頂板)의 테두리에 있는 말, 코끼리, 소 등의 조각이 생동감 넘친다. 인도의 국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녹야원 유적지에는 부처님께서 머무셨던 여래향실과 아소카왕이 세운 법왕탑(다르마라지카탑)의 기단, 직경 28m, 높이 43m에 달하는 거대한 탑신의 다메크탑, 아소카왕 석주 등이 남아 있다. 사르나트 아소카왕 석주는 높이 15.25m, 직경 71cm로 추정된다. 인도의 고고학 조사 총국장을 맡았던 영국의 고고학자 존 마셜(John Marshall)은 인도 곳곳에 산재한 아소카왕 석주들을 최전성기의 아테네 건축 기술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르나트의 아소카왕 석주 기둥에 브라흐미 문자로 새겨진 문구는 산치 석주에 적힌 문구와 함께 분열 법칙(Schism Edict)이라 하는데, 부파불교의 분열로 인한 승단의 분열을 막기 위한 아소카왕의 노력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사르나트는 5~6세기 말 인도 고유의 불상 조각의 흐름 중 하나이자 인도의 지배적 조각 양식인 사르나트 양식이 출현한 곳이다. 신비적 이상주의로 특징 지어지는 굽타 양식과 달리 사르나트 양식은 소년의 얼굴, 가녀린 몸매, 속살이 비치는 듯한 얇은 천의 등 인도적 고유미를 더욱 진하게 풍긴다. 사르나트 박물관에 16세 소년의 얼굴을 하고 안락함과 자애로움을 풍기고 있는 전법륜상이 세계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끌어당기고 있다.

불교의 두 가지 보물이 생겨난 곳
불교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는데, 불·법·승이 그것이다. 보드가야가 세 가지 보물 중 첫 번째인 불(佛)이 출현한 곳이라면, 사르나트는 나머지 두 가지 보물인 법(法)과 승(僧)이 생겨난 곳이다.

두 번째 보물인 법은 어떤 모습으로 처음 출현했을까? 부처님의 최초 사자후는 바로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이것을 중도(中道) 대선언이라 한다. 그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내용은 쾌락의 탐닉과 자기 학대이다. 이 두 가지 극단에 몰두하지 않기 때문에 ‘가운데 길’이라는 의미의 중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도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내용이 여덟 가지 바른 길(팔정도)이다. 팔정도는 부처님이 반열반 직전에 받은 마지막 제자 수밧다에게 “팔정도를 ‘얻지 못하면’ 네 가지 사문(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 출현하지 않는다”고 하심으로써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따라서 가운데(중 中)란 곧 바름(정 正)이다. 여덟 가지 바름의 실천은 최상의 지혜와 열반으로 인도된다. 최상의 지혜는 사성제(四聖諦)의 해행증(解行證), 즉 이해, 실천, 실현이다. 사성제의 실현은 곧 열반의 증득이다.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가 고(苦)라고 철저하게 알아져야 하고, 고의 원인인 집(集=갈애)은 버려져야 하고, 멸(滅=고의 소멸)은 실현되어져야 하고, 고의 소멸로 인도되는 도(道)는 닦아져야 하고, 또 그렇게 되었다고, 즉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스스로 천명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보드가야의 오도송에서 집 짓는 자를 봄으로써 마음이 열반에 이르러 모든 갈애가 파괴되었다고 하셨다. 유년 시절에 고뇌했던 고통에 가득 찬 생로병사의 원인이 바로 갈애였으며, 쾌락과 자기 학대라는 양극단을 떠난 가운데 길(=중도)의 실천, 곧 바른 길의 실천에 의해 열반에 도달하고 갈애가 소멸되기에 이른 것이다.

아소카왕 석주에 새겨진 분열 법칙 문구


부처님과 다섯 비구가 만난 곳에 세워진 기념탑, 영불탑

세 번째 보물은 승(僧)이다. 이 승이 처음으로 출현한 곳이 바로 사르나트이다. 그 승이란 부처님의 최초 설법을 들은 다섯 비구들이다. 그들 중 최초의 깨달음을 얻은 이가 교진여 존자이다.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이다(집법즉멸법 集法卽滅法)”라는 법의 눈이 생겼다. 이에 부처님께서 “참으로 교진여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말했다고 해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녹야원으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 3개월간의 첫 안거 중에 나머지 비구들도 차례대로 깨달음을 얻었으며, 『무아(無我)의 특징경』의 설법을 듣고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

『무아의 특징경』에서 부처님은 오온(五蘊=색수상행식)이 무아(無我)임을 설하신다. 오온은 왜 무아인가? 그것은 무상한 것이며,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나의 통제를 따르지도 않는다. 이러한 것에 대해 이것이, 즉 오온이 나의 자아라고 주장할 수 없다.

따라서 오온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상에서나, 내외원근(內外遠近)의 공간상에서나, 세추열승(細麤劣勝)의 특성에서나 그 어떤 점에서도 나의 자아를 주장할 수 없다. 즉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아에 대한 통찰이 일어나면 다음의 일련의 과정이 뒤따라오면서 번뇌의 멸진에 이르게 된다. 무아의 통찰→오온에 대한 염오→탐욕의 빛바램→해탈→ 해탈지견→청정범행 성취→후유(後有) 없음으로 결론 지어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르나트는 삼보 중 이보가 출현해 불교의 본격적 출범의 돛을 올린 곳이다. 부처님의 법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적 확산 속에서 수많은 종파들을 낳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 거대한 성인의 말씀 모음집으로 발전했으며, 다섯 명의 비구는 수많은 스님들과 불자들로 확대 양산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진리에 목마른 인류로 하여금 끝없는 진리에 대한 각고의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글과 사진|각전 스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저서에 『인도 네팔 순례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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