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돌아가시다
룸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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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데비 사원(부처님 탄생지가 내부에 있다) |
불교의 4대 성지는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신 곳,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신 곳, 반열반(般涅槃, parinirvāna)하신 곳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이며, 이 4대 성지에 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라고 직접 말씀해두신 것이 『전법륜경』에 전해지고 있다.
부처님이 오셨다는 것의 의미
우리는 부처님 탄생일을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이름 붙여 기념하고 있다. 부처님이 오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부처는 붓다의 음역인데, 붓다(Buddha)는 깨달음이라는 뜻의 어근 Bud에 사람을 뜻하는 dha를 붙인 말로 깨달은 자라는 의미다. 부처에 존칭 어미 님을 붙여 부처님이라 존경해 부른다. 부처님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몸과 인격을 가진 생명체로서의 한 인간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깨달음, 즉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부처님은 네팔의 룸비니에서 태어나셨다. 도솔천에서 호명(護明)보살이라는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 다음 생에 부처님으로 출현할 보살)로서 계시다가 부처로서 출현할 때가 되었다. 그때 보살은 수명, 대륙, 지방, 가계, 생모의 다섯 가지를 관찰하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곳을 선택하니 현재 히말라야 산록의 카필라바스투의 정반왕을 아버지로 마야 왕비를 어머니로 해서 태어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때 마야 왕비는 아살라 칠석제 기간이어서 7일 전부터 정계(淨戒)를 지키는 때였는데, 흰 코끼리 꿈을 꾸었다. 보살이 마야 왕비의 태에 입태하신 것이다.
마야 왕비가 재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때에 부처님께서 그 태에 드셨다는 이야기는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다. 정신 수준이 높고 깨끗한 존재는 그러한 자신의 상태에 합당한 몸과 마음을 지닌 사람의 태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거꾸로 자신의 행이 바르면 그러한 존재가 자신에게로 오게 되는 것이다.
마야 왕비는 산달이 되자 관습대로 자신의 친정으로 향했다. 그러나 자신의 친정에 도착하지 못하고 도중에 지금의 룸비니 동산에서 출산했다.
머무름이 없는 진리를 보여주시다
길에서 태어나신 부처님은 출가해 마가다국의 가야까지 걸으셨고,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는 평생을 탁발하시면서 걸으셨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시던 중 쿠시나가라에서 적멸에 드셨다. 길에서 태어나 길을 걸으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셨다.
머무름이 없는 진리를 온 생애를 통해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에 머무를 수 없고 미래에 머물 수 없으며 현재에도 머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매 순간을 부여잡고 살고 있다. 이 부여잡음을 놓을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외치셨다. 깨달은 참나만이 오직 존귀하다는 말이다. 불교는 무아(無我)에서 참나의 사상으로 발전했는데, 참나가 곧 무아이다. 대승불교를 거처 선종에 이르러서는 참나에 대한 언급은 차별 없는 참사람이라는 임제 스님의 무위진인(無位眞人)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이를 깨달은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했고 해탈 열반에 이르게 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시자마자 이 한마디로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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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부처님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
현재의 룸비니 동산에 가보면 큰 연못이 있고, 그 앞에 하얀 건물이 연못 맞은편의 거대한 보리수를 마주하고 있다. 건물 옆에는 부러진 아소카왕 석주가 서 있다. 이 연못의 물로 마야 부인이 낳은 아기가 목욕했을 것이다.
하얀 건물이 마야데비 사원이다. 건물 가운데에 불탄생(佛誕生) 부조가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큰 듯한 바위에 새겨져 서 있고 그 밑에는 부처님의 족적석(足跡石)을 모셔두었다. 사방 벽에 붙여 잔도처럼 통로를 만들고 울타리를 쳐두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이 통로를 따라 중앙의 불탄생 부조와 족적석에 도달한다.
불탄생 부조는 마야 부인이 나뭇가지를 잡고 출산한 아기를 사천왕이 받는 장면으로 마우리아 시대에 세워진 것을 쿠샨 혹은 굽타 시대에 모사한 것으로 본다. 족적석은 아소카왕이 부처님의 탄생지를 기념해 벽돌 위의 석재에 올려둔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 지점은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퓌러(1853~1930)가 츄리아 언덕에서 이곳이 룸비니라는 명문이 적힌 아소카왕 석주를 발견함으로써 고증되었다. 그 명문은 하얀 건물 옆 약 7.2m의 높이로 서 있는 아소카 석주 기단에서 위쪽으로 3.3m 지점에 다섯 줄로 새겨져 있다. 브라흐미문자로 적힌 이 명문을 룸민데이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인도 역사상 최초의 기록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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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에 새겨진 룸민데이 법칙. 아소카왕의 이 명문으로 인해 이곳이 부처님 탄생지로 확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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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아래에서 좌선하는 서양인들 |
친애희견왕(아소카왕)은 관정 즉위 20년에 몸소 여기에 와서 참배했다. “여기에서 붓다 샤카무니께서 탄생하셨다”고 자연석을 (…) 울타리를 가진 (…) 세우게 하고, 또 석주를 건립하게 했다. 여기에서 세존이 탄생하셨기 때문에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세받고 또 8분의 1을 지불하게 되었다.
필자가 룸비니에 참배하러 갔을 때, 안내해주던 현지 가이드가 이 문장을 순례객들 앞에서 외워서 들려주었다. 참으로 감동스럽고, 감탄이 절로 나왔었다. 이 아소카 석주는 기둥머리가 말 모양이었는데, 지금은 부러져 나가 찾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참배할 때의 룸비니는 서양 사람들의 신심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마야데비 사원의 좁은 통로 안에서, 그리고 연못 건너편의 보리수 그늘 아래에서 조용히 좌선하는 서양 불자들의 모습은 순례다운 순례라는 인상을 깊이 주는 것이었다.
선종에서는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공안이 있다. 선문 염송의 제1칙이 그것이다.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시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나셨으며,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시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셨다”이다. 이에 대해 원오극근 스님은 “도솔천과 왕궁 태에서 나옴과 중생제도가 시종일관 애초부터 가고 옴이 없으니 자취를 쓸어 없애고 뿌리를 뽑아버려야 불 속에서 연꽃이 곳곳에서 피어나리” 하고 송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수행자들이 바로 그 가고 옴이 없는 진리를 위해 끊임없이 가고 오고 있다. 그 가고 옴이 없는 진리를 위해, 자취를 쓸어 없애고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서라도 부처님 성지에 한번 더 다녀와야겠다.
글과 사진|각전 스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수행정진 중이다. 저서에 『인도 네팔 순례기』가 있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돌아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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