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는 오도록, 갈 때는 가도록|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2024-08-23

올 때는 오도록, 

갈 때는 가도록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올 때는 오도록 하고, 갈 때는 가도록 하라

세상 모든 것은 왔다가 간다. 올 때가 되면 오고, 갈 때가 되면 간다. 저마다 자기가 와야 할 때 정확히 오고, 갈 때가 되면 정확하게 돌아간다. 

계절도, 밤과 낮도, 바람도, 구름도, 사람도, 인연도, 일도, 돈도, 명예도, 건강도, 모든 것이 전부 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반드시 가고야 만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이를 생사법(生死法), 생멸법(生滅法)이라고 한다. 생겨난 모든 것은 멸할 수밖에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법칙이다. 지혜로운 이는 바로 이러한 진리의 법칙대로 산다.

올 때는 오도록 허용해주고, 갈 때는 가도록 허락해준다. 올 때 더 많이 안 왔다고 괴로워하지 않고, 갈 때 왜 벌써 가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왔다가 간다는 것을 알기에, 언제 떠날지 모름을 이해한다. 그러니 과도하게 집착하지도 않고, 떠나갈 때 과도하게 서글퍼하지도 않는다. 과도하게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다. 그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왔다가 간다는 속성. 법인. 거기에는 ‘나’도 빼놓을 수 없다. 나 또한 왔다가 가는 것일 뿐이다. 무엇 때문에 집착하겠는가.

여래여거(如來如去), 부처님의 또 다른 명호, 이름이다. 여여하게 오고, 여여하게 가시는 분, 세상 모든 것들이 올 때 오도록 갈 때 가도록 붙잡지 않고 그저 내버려두고 허용해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다.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두라. 애쓰지 말라. 취하거나 버리지 못해 안달할 것 없다. 오면 오도록, 가면 가도록 해주라. 거기에 참된 자유가 있다.


오고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멸법, 즉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마치 손바닥을 마주치면 소리가 나지만, 그 소리는 인연 따라 났다가 사라지면 끝인 것처럼. 이 소리의 생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뜻도 없고, 나를 괴롭히지도 않고,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그저 소리는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끝이다.

세상 모든 것의 생멸이 이와 같다. 존재도 이와 같이 생멸한다. 말도, 돈도, 명예도, 사랑도, 권력도, 아파트도, 모든 것들은 이와 같이 실체성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생각으로 그것을 실체화해, 의미를 부여하고, 중요도를 부여해,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 문제가 생겨난다.

예를 들어 ‘능력 없는 녀석’이라고 누가 나에게 말했다. 이 말은 박수 소리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과 같아서, 전혀 실체가 없다. 그러나 내 쪽에서 ‘능력 없는 녀석’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을 정말 능력 없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낙인찍게 되면, 그 말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고 집착을 남기며 문제와 고통을 남기는 실체적인 것으로 바뀐다. 사실 이 말에는 전혀 힘도 없고, 의미도 없고, 실체성도 없지만, 내 쪽에서 그 모든 것을 부여함으로써 내 스스로 거기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이다.

돈도, 육체도, 건강도, 사랑도, 명예도 이와 같이 그저 인연 따라 왔다가 갈 뿐이다. 인연 따라 온 것은 인연 따라 가면 끝이다. 거기에 의미는 없다. 생멸법은 분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기 스스로 무수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스스로 집착하며 얽매이게 된다. 무상, 무아인 생멸법에 자기 스스로 의미와 중요도를 부여하고 분별했기 때문에, 그것이 실체인 것처럼 나를 괴롭힌 것일 뿐이다. 


생겨난 것 붙잡지 않기

모든 생멸법은 이와 같이 인연 따라 잠깐 왔다가 가면 그만이다. 붙잡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왔다가 간 ‘것’에 대해 무수히 많은 생각, 해석, 판단, 이미지를 그려가며 그 찌꺼기, 쓰레기를 채집하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다. 그것을 상(相)이라고 한다. 모든 상은 허상이고, 허망하다.

타인에게 욕을 먹었다고 치자. 그 욕설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 욕설을 마음으로 붙잡아 괘씸하게 여기며 그를 미워하면서 허상의 찌꺼기를 붙잡고 스스로를 괴롭힌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둘 뿐, 흔적을 남길 것은 없다. 

과거뿐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상 또한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뿐, 전혀 사실이 아니다. ‘늙어서 병들면 어쩌지?’, ‘노후가 불안해’라는 속삭임 또한 상일 뿐이다.

과거와 미래뿐 아니라, 사실은 ‘나다’, ‘세계다’, ‘있다’ 하는 것이 전부 상이다. 허상 아닌 것이 없다. 

상을 붙잡지 않으면, 언제나 눈앞은 아무 일이 없다. 그저 매 순간 이러할 뿐이다. 모든 것이 다 있지만 아무 일이 없다. 그저 펼쳐지는 눈부신 오늘을 경험할 뿐. 인연이 올 때 베풀고, 인연이 가면 그저 쉴 뿐, 따로 할 일이 없다. 물 흐르듯 흐름에 자연스럽게 내맡기고 살되, 어떤 인연도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법상 스님|동국대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하여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16만 명의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고,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상주 대원정사 주지, 목탁소리 지도법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도표로 읽는 불교교리』 등이 있다.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