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아느냐?|비하인드 팔상도

2023-01-02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아느냐?
도솔래의상도(兜率來儀相圖)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도솔래의상도

나는 부처님 생애가 좋다. 그래서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처님 생애를 읽곤 한다. 나는 부처님 생애야말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와 컴퍼스가 세상을 바르게 하지는 못하지만, 자와 컴퍼스에 의해 세상은 바로 잡히고 문명은 축적된다. 이와 같이 부처님 생애를 통해 우리는 삶의 방향을 정립하고, 불교가 말하는 행복의 참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다. 풍랑 속의 나침반처럼, 부처님 생애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혜의 등대이기 때문이다.

불교도로서 부처님 생애를 사랑한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니다. 한국 불교에는 20여 종의 팔상도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 생애를 총 8장의 그림으로 그려 알기 쉽게 표현한 불화이기 때문이다.

팔상도는 만화처럼 한 장에 여러 시간대의 사건이 동시에 그려져 있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는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이라고 한다. 단, 만화와 다른 점은 만화책은 사건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직선의 칸막이가 사용되지만, 팔상도는 거대한 나무나 구름 등이 활용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자연 친화적 기법이라고나 할까?

팔상도는 두 가지가 유명하다. 1709년에 조성된 <예천 용문사 팔상도>(보물 제1330호)와 1775년의 <양산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보물 제1041호)가 그것이다. 용문사 팔상도는 현존하는 팔상도 중 가장 연대가 빠르다. 이에 반해 통도사 팔상도는 가장 완성도가 높다.

용문사 팔상도는 제작이 빠른 만큼 심플하다. 그래서 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통도사 팔상도를 봐야만 한다. 특히 통도사 팔상도에는 방기(傍記)라고 해서 내용에 대한 글이 쓰여 있다. 근세판 웹툰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서양을 휘어잡고 있는 K-웹툰의 기원은 멀리 18세기의 팔상도로까지 소급되는 것이다.

팔상도의 첫 그림인 <도솔래의상도>는 부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처님 생애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숨겨져 있다.

통도사 <도솔래의상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①은 좌측 상단으로 고타마(Gotama), 즉 부처님의 성씨인 구담 씨의 기원이 그려져 있다. 부처님의 종족은 석가(Śākya)족으로 이는 ‘능력 있는 자’라는 의미이다. 시조인 감자왕의 아들 니구라가 분가해 히말라야 기슭에 왕국을 건설하자, 이를 기뻐하며 ‘석가’라고 칭찬한 것에서 유래한다.

①에는 이와는 다른 부처님이 왜 구담 씨인지가 그려져 있다. 내용인즉슨, 구담(대구담) 선인의 제자(소구담)가 왕위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출가해 수행자가 되었는데, 어느 날 도둑으로 몰려 나무에 묶인 채 화살에 맞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스승 구담 선인이 그 죽음을 애도해 피에 젖은 흙을 가져다 두 그릇에 담아두니, 천신이 변화시켜 열 달 뒤에 각각 남자와 여자가 탄생한다. 이들이 부처님의 조상인 구담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①의 좌측을 보면, 묶여 있는 제자와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우측 위는 스승 구담 선인이 신통으로 제자의 위급함을 알고는 하늘을 날아오는 급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화살을 멈출 수는 없었으니, 오른쪽 아래를 보면 피가 맺힌 흙에서 남녀가 태어나는 장면을 확인해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이 수행자적인 신성한 혈통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의 이야기는 좌측 아래에서 시작된다. 이를 보면, 시녀들에게 둘러싸인 왕궁의 마야 부인이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 부인의 머리 위로는 한 줄기 서기와 같은 기운이 뻗쳐 오른쪽 상단으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이는 꿈속의 내용을 설명하는 그림이다. 부처님은 전생에 도리천에서 천신들을 이끌던 호명 보살로 여섯 엄니(상아)를 가진 전설적인 흰 코끼리를 타고 어머니에게로 잉태된다. 이것이 육아백상(六牙白象)의 태몽이다.

오른쪽 위를 보면, 여섯 엄니의 흰 코끼리에 올라탄 호명 보살이 뒤쪽에서 천신들의 위요를 받고 있는 모습, 또 앞쪽에는 장구·북·비파·요발·법라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신들의 기쁜 울림이 묘사되어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마야 부인으로 연결된 선의 중간쯤을 보면, 두 명의 깃발맨이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인로왕 보살과 같은 인도자, 즉 가이드이다. 즉 가이드 두 명의 인도를 받으며, 호명 보살은 마야 부인의 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끝으로 호명 보살의 좌측에는 금위라는 신이 합장을 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금위는 호명 보살의 명을 받고, 부처님이 어느 곳 누구의 아들로 태어나야 하는지를 두루 보고 판단해서 보고한 신이다. 즉 마야 부인의 태로 들어가기에 앞선 정찰 대장이 바로 금위인 것이다.

마지막 ③은 마야 부인이 태몽을 꾸고, 정반왕과 함께 희한함을 말하면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부친인 정반왕이 선상 바라문을 불러 꿈을 해석하도록 하자, 선상은 마야 부인의 태자 회임을 아뢰게 된다. ③의 중간에는 왕명을 받고 황급히 뛰어오는 선상 바라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사천왕과 금강역사가 혼합된 듯한 두 명의 궁궐 문을 수호하는 수문장의 모습이 확인된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문지기 위쪽의 간판, 즉 편액에 ‘돈화문(敦化門)’이라고 쓰여 있다는 점이다. 돈화문은 조선의 궁궐인 창덕궁(혹 창경원)의 정문이다. 즉 부처님의 이야기에 조선의 궁궐 문을 넣어, 인도와 조선을 연결한 희대의 위트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조선의 임금이 불교를 신앙해 숭유억불이라는 현실이 반전하기를 기원한 화승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통도사 <도솔래의상도>에는 시공을 넘나드는 실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아로새겨져 있다고 하겠다.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에서 총 6개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60여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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