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 아닌 모든 존재 사랑하기 『싯다르타』, 『데미안』,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2024-09-20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 아닌 모든 존재 사랑하기


『싯다르타』, 『데미안』 그리고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정여울 

작가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에게로 집중된 삶의 에너지를 타인, 세상, 우주 전체를 향해 돌릴 수는 없는 것일까.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한 세 사람이 바로 부처님, 헤르만 헤세,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 데미안이다. 부처님은 『숫타니파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치 물처럼 생각하거라. 사람들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배설물, 소변, 침, 고름, 피를 물로 씻을 때, 그 물이 그 더러운 것들을 무서워하거나 굴욕감을 느끼거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라훌라여, 마치 물처럼 생각하거라.” 그 말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물은 더러움을 씻어내면서도 그 더러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러운 것들에 대한 혐오감과 굴욕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만으로 족하다. 게다가 끊임없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끝없이 흘러가면서도 불평하거나 ‘아까 그곳’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처럼 생각하면 ‘자아’의 모든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민음사 刊, 2002

◦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도 있다,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가 『싯다르타』에서 제안한 삶의 화두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를 벗어나 사유할 수는 없는 것일까. 작품 속의 싯다르타(이 싯다르타는 부처님이 아니라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이다)는 어떻게 하면 ‘나’라는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을 벗어날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가 찾아낸 해답은 바로 ‘사랑’이다. 그는 연인에 대한 사랑보다 자식을 향한 사랑에서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나’를 넘어, ‘나’보다 더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아직 몰랐던 것이다. 그가 사랑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그의 연인 카말라가 싯다르타 모르게 나은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 뒤부터다. 아들이 아버지의 모습이 가난하고 초라하다며 거칠게 밀어낼 때조차도, 아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할 때조차도, 싯다르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싯다르타는 아들에게 처절하게 버림받은 뒤에야 지상에는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싯다르타 자신이 출가할 때 아버지를 떠나버린 것이 얼마나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인지도, 뒤늦게 깨닫는다. 그것은 사랑을 짓밟는 행위였으며, 사랑을 저버린 행위였음을, 싯다르타는 비로소 깨닫는다.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민음사 刊, 2000

◦  인간이 추구할 최고의 이상향 ‘데미안’, 『데미안』

헤르만 헤세가 창조한 최고의 캐릭터 데미안은 그의 분신이기도 하다. 데미안을 통해 헤르만 헤세는 인간이 추구할 최고의 이상향을 발견한다. 데미안은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타인에게 깨달음을 선물하는 데서 삶의 기쁨을 찾는다. 게다가 아파하는 타인을 구하는 삶을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않는다. 데미안은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연약한 소년 싱클레어를 구해냄으로써 풍요로운 지혜와 깨달음이 가득한 자신과 에바 부인의 공동체로 싱클레어를 이끌어준다. 내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었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최고의 친구이자 스승이 되어준다. 바로 그런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꿈꾸고 있었던 ‘나를 잊는 사랑, 나를 뛰어넘는 사랑’이 아닐까.


로버트 A. 존슨·제리 룰 지음, 신선해 옮김, 가나출판사 刊, 2020

◦  ‘마음속 용과의 전투’에서 싸워 이겨 

     ‘더 커다란 나’와 만나기,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

융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은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에서 ‘나’, 즉 에고를 향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가 바로 ‘마음속 용과의 전투’임을 일깨워준다. 현대인은 외적인 성취나 성공을 ‘진짜 전투’와 착각해 자기 내면의 용과 싸우는 일을 멀리하고, 오직 돈이나 성공을 향해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달려간다. 하지만 로버트 존슨은 ‘마음속 용과의 전투’를 게을리하면 그 어떤 성공도 ‘더 커다란 나’와의 만남으로 이끌어주지 못함을 일깨워준다. ‘나’를 향한 나르시시즘, 나를 향한 끝없는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타인, 세계, 나 아닌 모든 존재’를 향한 사랑이라면, 우리는 먼저 ‘용과의 전투’를 치러내야 한다. 바로 그 용과의 전투란 ‘나는 그 무엇도 나 혼자 해낼 수 없다’는 의존적 자아로부터의 눈부신 해방이다. 

그 어떤 허세도 부리지 않고, 그 어떤 외부의 도움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내 안의 용, 즉 ‘나는 아무것도 혼자서 해낼 수 없다는 두려움’과 싸워 이기는 것이야말로 ‘나’라는 존재의 철옹성을 벗어나는 해방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내면의 용과 싸우고 있는가. 나는 오직 일을 통해서만 나의 진정한 효용성을 증명할 수 있다는 용과 싸우는 중이다. 일을 통해, 성과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를 완성하려는 욕망과 싸우는 것은 내가 매일 벌이고 있는 ‘용과의 전투’이며, 그 욕심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면서 비로소 ‘나를 넘어선 또 하나의 나’를 만나는 중이다. 

나는 산책길의 소박한 아름다움으로부터 위로받고,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보다는 ‘나를 둘러싼 더 커다란 세상의 사랑’으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그렇게 나는 그토록 단단하고 무겁게만 느껴지던 ‘나’라는 존재의 올가미로부터 기쁘게 해방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싶다.  


정여울|작가.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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