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 길라잡이』 - 성스러움과 지성이 만날 때|이 책을 소개합니다

2025-05-23

대원불교학술총서 『불교철학 길라잡이』 


성스러움과 

지성이 만날 때


 이규완 『불교철학 길라잡이』 저자,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이규완 지음, 도서출판 운주사 刊


‘무상’이고 ‘무아’임에도 충분하다는 진리를 깨달아가는 여정의 보고서

어린 시절 대관령 동쪽 시골 마을엔 종교마저 소박했다. 언덕 너머엔 박수무당이 사는 작은 당집이 있었고, 또 한 고개 지나 위치한 상여집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가끔씩 마을을 찾는 시주승의 바랑에 지금은 기독교인이 된 어머니께서 쌀 몇 홉을 부어 넣을 때에도 그 삿갓과 의복이 무척이나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군인들이 훈련을 마치고 떠난 자리에 버려진, 포켓용 신약성서로 기억되는 그 책에서는 묘한 향기만이 추억처럼 새겨져 있다. 

아직 언어로 포착되지 않았던 그 시절의 감정은 아마도 ‘무상’, ‘허무’, 혹은 ‘불안’과 같은 심상이었던 것 같다. 이후 교회를 알기 전에 성경을 공부하고, 성서 연구를 전공으로 공부하던 대학원 시기까지 나에게 ‘무상(無常)’은 ‘허무(虛無)’와 비슷한 의미로 각인되어 있었다. 석사 논문에서 욥기의 신(神)을 ‘무상성의 신(神)’이라 정의해 심사위원의 지적을 받았을 때에도 아마 그 ‘무상’은 ‘허무’를 벗어나지 못했던 듯하다.  

인도-티베트 불교철학의 대가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는 ‘한 개종자의 고백-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에서 ‘무아’와 ‘무상’이 결국 ‘허무’로 귀결한다는 허무한 결론에 도달하고, 죽음 이후에도 영생을 보장한다는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불교의 ‘무아’와 ‘무상’은 정녕 허무주의로 추락하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형태의 ‘자아’를 내세워야만 존립할 수 있는 불완전한 진리였던가? 

『불교철학 길라잡이』는 ‘무상’을 ‘허무’로 오인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무상’이고 ‘무아’임에도 충분하다는 진리를 깨달아가는 여정의 보고서이다. 나 자신의 공부 과정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난해한 불교 방언이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데 적잖은 방해가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붓다의 지적 사유에 박자를 맞추는 미래의 불교를 신행하기 위해, 이제 우리는 일상의 언어로 불교의 지적인 전통에 다가서야 할 때이다. 무상(無常)은 허무주의가 아니고, 무아(無我)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지성의 법당에서 ‘무상’과 ‘무아’는 허무주의나 신비주의적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고귀한 지성의 통찰이고 지적인 해방이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시하는 놀랍고도 냉철한 진리로 나아가는 길에 『불교철학 길라잡이』가 좋은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규완|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인도불교철학의 극미론(원자론)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형이상학적 원자론 연구-희랍, 인도, 불교철학에서 현재까지”라는 주제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유식이십론술기 한글역』, 『세친의 극미론』, 『불교철학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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