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의 눈부심보다 마이너스의 아름다움으로 - 조승리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이원 『물끄러미』|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2025-06-19

플러스의 눈부심보다 

마이너스의 아름다움으로


조승리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이원 『물끄러미』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   불교의 매력은 버림, 해방, 해탈, 그리고 타인을 향한 자비와 연민


누군가 나에게 불교의 매력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불교의 매력은, 행복을 일부러 추구하지 않음으로써 행복은 물론 깨달음까지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고. 타인을 결코 내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음으로써 타인을 연민의 대상, 존중의 대상, 마침내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마음의 기술이라고.

수많은 위인들이나 영웅들은 저마다의 업적이나 재능으로 평가받는다. 고흐는 그림으로 모차르트는 음악으로 처칠은 정치와 외교술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부처는 신기하게도 재능이나 업적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무한한 연민과 자비로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진 존재이기에 영원히 기억되는 존재라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진다. 모두들 재능이나 업적을 소유함으로써 명성을 떨쳤지만 부처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림으로써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바로 그런 버림의 기술, 해방의 기술, ‘세상 사람들이 평가하는 나’로부터 떠나는 해탈의 기술에 이끌리곤 한다. 그리하여 나는 모든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삶의 향기, 타인의 아픔을 향한 연민과 자비의 힘이 느껴지는 글을 사랑한다. 


조승리 지음, 세미콜론 刊, 2025


◦   더 잘 본다는 것, 더 깊고 넓고 아름답게 본다는 것은 어떤 ‘풍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보는 힘임을 깨닫게 하는 책,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조승리의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은 ‘시각장애인’의 정체성을 뛰어넘어 정상인들과 똑같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을 갈망하는 한 사람의 투쟁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스무 살 무렵 시각장애인이 된 그녀는 ‘볼 수 있는 세계’를 마지막으로 경험할 수 있을 때쯤 마지막 소원이 세계문학전집을 모조리 읽는 것이었다고 한다. 책을 읽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읽어두기 위해, 문학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많이 기억해두고 싶어서. 그런 문학청년의 뜨거운 열정이 빛을 발해 드디어 그녀는 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볼 수 없는 그녀가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볼 수 없는 그녀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수없이 커피잔을 떨어뜨리며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열정적으로 플라멩코 춤을 배우고, 성형외과 상담을 받아 ‘살짝’ 시술을 받고, 백두산은 물론 대만과 베트남까지 여행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서글픔이 가슴을 온통 채우게 된다. 이렇게 간절하게 하나하나 꿈을 이루어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시리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기적과 같은 아름다움’으로 체험하는 그녀의 삶이 생생하게 만져진다. 그녀의 글을 통해 나는 더 잘 본다는 것, 더 깊고 넓고 아름답게 본다는 것은 어떤 ‘풍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보는 힘임을 깨달았다. 풍경 속의 외적 아름다움만 볼 뿐 그 안에 서린 이야기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한 것이 된다. 

그녀가 앞을 보지 못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또 다른 보임의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조승리의 글은 소담스러운 유머와 강렬한 파토스로 가득하다. 시각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온갖 차별과 낙인을 솔직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아픔을 극복하는 특유의 ‘깡’과 ‘유머’가 호쾌하게 그려져 있다. 정상 시력으로 사물을 볼 수는 없지만, 시각장애인의 세계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녀의 글을 통해 온몸의 감각과 머릿속의 기억과 설명하기 힘든 제3의 감각으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생생한 세계, 시각과 지성, 기억과 상상력이 합쳐진 또 하나의 감수성으로 모든 것을 볼 줄 아는 한 뛰어난 지성을 만난다. “기어코 세상을 구경하고 사람을 겪어내며 최대치로 느낀 살아 있다는 감각”이라고 책을 소개하는 문장도 가슴 시리다. 조승리 작가의 글에는 기어코 내가 꿈꾸는 모든 것들을 해내리라는 투지가 가득하다. 남들이 아무리 막아내도 내가 하고 싶은 걸 기필코 해내겠다는 의지가 문장 곳곳에 숨어 있어 이 책을 읽으면 타인의 아픔을 통해 내 삶을 응원받는 듯한 아름다운 감동이 샘솟는다. 단지 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아니라 그 결과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꿈꾸는 모험 그 자체를 온몸으로 끌어안는 순수한 저돌성을 본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끝까지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성과와 아무 상관없이 나 혼자만의 기쁨을 온몸으로 느껴보기 위해 그렇게 해보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순수한 저돌성이 너무나 좋다. ‘눈먼 사람이 무슨 해외여행을 가려고 하냐? 눈이 안 보이는데 무슨 성형 시술을 하겠다는 거냐’는 정상인의 편견 속에 담긴 시각장애인을 향한 낙인을 그녀는 사뿐히 즈려밟고 눈부시게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녀는 볼 수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뜨거운 환희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세계를 그녀가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시각장애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보고 느끼고 만지고 사랑하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 속으로 기쁘게 초대받는 느낌이다.


이원 지음, 난다 刊, 2024


◦   향기로운 치유와 깨달음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책, 『물끄러미』


이원 시인의 『물끄러미』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온갖 희로애락을 물끄러미, 고요히, 차분히 바라보는 시인의 아름다운 감수성을 소담스럽게 담아낸다. 나처럼 아파하고 있을 또 다른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타인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따스한 시인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는지 묻는 학생들의 질문에 스민 온갖 인생의 고민과 걱정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시인의 다정한 답변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시 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먼저 시인으로 데뷔해 살아가는 선배 작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세상의 온갖 희로애락을 다 맛본 어른의 입장에서, 아직 어른의 삶이 두렵기만 한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 사랑과 우정의 문장을 들려주는 시인의 따스한 마음에 저절로 감염되는 느낌이 좋다.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짐으로써 비로소 진짜 나 자신이 되는 듯한 향기로운 치유와 깨달음의 세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책이다.   



정여울|작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KBS <정여울의 도서관> 및 EBS <클래스e>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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