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불교 소설|문학으로 읽는 불교

2024-10-11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의
불교 소설 산책

송인자
소설가


한승원(1939~)은 서민들의 삶에 나타난 생명력, 한(恨)의 문제를 즐겨 소설의 소재로 다루고 있는 작가이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목선」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1995년부터는 고향 장흥 바닷가에 내려가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들은 늘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생명주의’에 천착(穿鑿)한다. 인간 본위의 휴머니즘이 자연에 저지른 해악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는 노장(老莊)사상이나 불교사상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의 작품 중 불교 소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의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아버지로 더욱 유명해졌다.

한승원의 대표적 불교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원효』, 『피플 붓다』, 『해변의 길손』, 『흑산도 하늘길』을 중심으로 그의 불교적 세계관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1985년 발표된 이 작품은 1989년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그해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삭발 투혼을 보인 배우 강수연은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는 대조적인 두 사람의 구도자가 등장한다. 두 사람의 갈등 구조 속에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본질을 파헤쳐간다.

순녀는 승려가 되어 떠난 아버지와 광주민주화운동 와중에 아내를 잃은 현종 선생을 향한 사랑의 업보를 안고 입산한다. 그러던 중 자살을 기도하던 박현우를 구해주고 그가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순녀가 필요하다고 하자 관계를 맺는다. 순녀가 출산하자 현우는 아이를 어딘가에 버린 뒤 돈 많은 여인을 따라가버린다.

진성은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으나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입산해 비구니가 된다. 스승 은선 스님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심한 회의감에 빠진다. 절을 떠나는 순녀를 비웃었지만 완전히 떨쳐지지 않는 미망으로 방황할 때마다 순녀를 떠올린다. 진성이 만행에서 돌아왔을 때 은선 스님은 중생들 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아픔과 고난을 함께하지 않은 것을 꾸짖는다. 진성은 은선 스님이 기다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속세를 헤매고 다니는 순녀임을 깨닫는다.

순녀는 낙도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지만 자신의 젊음이 사그라져가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구급차 기사인 송 기사와 결혼한 후 환자와 주민들을 돌보며 산다. 마침 현종 선생이 출간한 시집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 섬마을에 콜레라가 돌자 병원 사람들은 기진맥진한다. 전염병이 진정되고 즐거운 분위기에 젖던 밤, 순녀와 사랑을 나누던 남편이 사망한다.

은선 스님의 열반이 가까워온다. 폭설이 쏟아지는 밤, 순녀는 청정암으로 돌아온다. 은선 스님은 제자들에게 열반 후 자신의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좌에게 순녀의 후일을 부탁한다. 은선 스님은 순녀에게 한 아이가 청정암에 버려졌고 지금 윤 보살이 키우고 있다고 말해준다. 순녀는 그 아이가 자기가 낳은 아이라고 확신한다.

은선 스님이 열반에 든다. 진성은 그 장면을 순녀 이외에 본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다. 순녀를 내보낸 후 시체를 앉혀놓고 좌탈입망(坐脫立亡)했다고 선전한다.
대중들은 앞다투어 스님을 배알하며 찬탄한다. 다비식이 진행되는 동안 순녀는 따돌림을 받고 윤 보살은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죽음을 전한다.

진성은 불길이 사그라진 다비대(茶毘臺)에서 유골 한 개를 품에 감추는 순녀를 보고 빈정댄다. 사리를 찾던 진성은 사리인지 뭔지도 모를 큰 모래알 몇 개를 주워 담는다. 순녀는 은선 스님의 뼈를 넣어 사람들의 빛이 될 탑을 만들어 중생을 구하리라 결심하며 세상 밖으로 나선다. 이튿날, 신문은 대중의 존경을 받던 은선 스님에게서 여느 스님보다 많은 사리가 나왔다고 보도한다. 순녀는 낙도를 향해 떠나며 반야심경을 외운다.

이 소설은 세속에서 중생을 구제하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대승적 수행자 순녀와 청정한 암자에서 절제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소승적 수행자 진성을 이항대립(二項對立) 구조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원효』
원효 스님의 삶과 사상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장편 소설이다. 원효와 요석 공주의 일화를 상세히 묘사했다. 원효는 파계를 했다기보다는 승려 신분을 벗어던지고 더 많은 세속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원효는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을 반대한 반전주의자이며 중국 유학파 중심의 주류 승려들에 맞선 재야의 승려다. 또한 김춘추로 대표되는 국가주의자에 항거하며 시장 바닥에서 무애가(無碍歌)를 부른 자유주의자의 수장임을 부각하고 있다.
 
원효는 한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은 세계주의자이며 화쟁(和諍)과 무애(無碍)를 실천한 불국토주의자라고 말하고 있다. 2006년 김동리 문학상 수상작이다.

『피플 붓다』
작가는 장흥의 진산 억불산(億佛山) 정상 부근에 솟아 있는 억불바위를 서민을 구제하는 부처, 피플 붓다로 보았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할아버지 안교장과 베트남계 혼혈아인 손자 상호이다. 정체성, 다문화 문제, 교육 문제, 노인문제, 맹신의 부작용 등을 다루고 있는 안 교장의 구도 소설이자 상호의 성장 소설이다.
 
안 교장은 기존 가치관에 저항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상호를 보듬고 지켜준다. 안 교장이 상호에게 조언하는 장면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죽음을 알아야 허무를 알고 허무를 알아야 오만하지 않고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면 분수에 맞게 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 생명력은 허무를 맛보아야만 더 자유롭고 거침없이 헌걸차게 커나가는 것이다.”

『해변의 길손』
이 작품은 역사적 폭력(6·25전쟁, 5·18광주항쟁)이 삶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두 가지 모티프를 채용한다. 첫째는 인정받지 못한 인물의 비애로서 주변인이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둘째는 같은 시대를 살며 고난을 헤쳐온 사람끼리의 우정이다. 이 두 가지 모티프는 인간의 원초적 심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삶을 종(縱)으로 꿰뚫는 깊은 울림으로 밀려드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8년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흑산도 하늘길』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현산어보』의 저자로 알려진 정약전의 인간적 면모를 그린 소설이다.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생활에서 겪은 고뇌와 역경을 통해 가둬놓기와 풀어놓기의 미학을 배운다. 육체를 가두고 정신을 풀어놓는 지혜를 익혀 본질적이고 우주적인 삶에 도달한다. 작가는 말한다.

“우주적 시원(始原)에 맞닿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완전한 존재에 이르는 길이다.”

송인자
『월간문학』에 소설로 등단했다. 서초문인협회 총무,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사람 뒈지게 패주고 싶던 날』, 『기가 막히게 좋은 세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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