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인간 붓다를
만날 수 있는 『마하박가』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텍스트는 다양하며, 각기 다른 특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그 가운데에서 가장 인간적인 붓다를 만나고 싶다면, 『마하박가』의 제1장 크나큰 다발의 첫 번째 「송출품」부터 네 번째 「송출품」까지를 보아야 합니다. 『마하박가』의 번역자 전재성은 해제에서 이 부분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부처님의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인 정각의 내용과 그 후의 전법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승단의 형성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디가니까야』의 『열반경』과 아울러 가장 믿을 만한 부처님의 생애의 원형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범천의 권청은 왜 일어났을까?
붓다의 첫 설법은 언제였을까요? 많은 이들이 붓다의 첫 설법을 초전법륜으로 알고 있지만, 율장에 따르면 붓다가 정각을 이루신 후 둘째 주에 만난 바라문과의 문답이 붓다의 첫 설법입니다. 어느 날 흥흥거리는 오만한 바라문이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 머무시던 붓다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붓다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고따마여, 어떻게 해서 바라문이 됩니까? 바라문을 만드는 성품들은 무엇입니까?”
“어떠한 사제이든지 악한 원리를 제거하고 흥흥거리지 않고 떪음을 여의고 자제하고, 지혜에 통달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한 자, 세상에서의 융기가 결코 없는 자라면, 이치에 맞게 하느님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리.”
이 문답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요? 바라문의 그다음 대답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바라문은 귀의하지 않고 떠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붓다의 두 번째 설법은 정각 후 셋째 주에 이루어집니다. 붓다는 무짤린다 나무 밑에서 해탈의 지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아닌 커다란 먹구름이 일더니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이때 용왕 무짤린다는 고요하고 엄정한 붓다의 모습을 보고 용궁에서 나와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한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뜨거운 열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등에, 모기, 바람, 더위, 뱀과의 접촉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그는 똬리를 틀어 붓다의 몸을 일곱 번 감싸고, 머리 위에 크나큰 후드(hood)를 펼치고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해탈의 지복에 머무는 붓다를 보호했습니다. 그는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탈의 삼매에 들어 있는 붓다의 위의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바라문 학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붓다에게 귀의하고, 법문을 들은 뒤 공경하며 물러났습니다. 붓다의 두 번째 설법은 문답이 없는 위의 설법이었지만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붓다의 세 번째 설법은 정각 후 넷째 주에 이루어집니다. 지나가던 두 명의 상인이 붓다의 위의에 반해 보리죽과 밀환을 공양 올리고, 붓다와 그 가르침에 귀의했습니다. 그들은 최초로 ‘이귀의(二歸依)’를 제창한 불자가 되었고, 이 위의 설법 역시 성공적이었습니다.
붓다의 정각 후 다섯째 주, 붓다의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념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붓다는 정각 이후 세 차례의 설법을 경험했습니다. 그중 문답을 통한 첫 설법은 뚜렷한 성과가 없었지만, 말하지 않고 위의로 보여준 위의 설법은 모두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이었는지, 붓다에게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사념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이 사념을 알아차린 범천이 깜짝 놀라 붓다를 찾아가 “세상에 남으셔서 법을 설해주십시오”라며 세 번 권청합니다. 왜 세 번이었을까요? 붓다가 범천의 권청을 거듭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중생들이 갈애(渴愛)로 인한 전도몽상(顚倒夢想)에 사로잡혀 있기에 연기의 진리를 체득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그만큼 강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결국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이렇게 선언합니다.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녹야원으로 가는 길
‘내가 누구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권청을 수락한 뒤, 붓다는 이렇게 생각하며 가르침을 전할 첫 번째 대상을 물색했습니다. 처음 떠오른 이는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스승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였지만, 그들은 이미 임종한 상태였습니다. 다음 후보는 고행 시절 함께 수행했던 오비구들이었습니다. 이에 붓다는 의욕적으로 그들을 찾아 녹야원으로 길을 떠납니다.
붓다는 신이 아닙니다. 가르침을 전할 것을 결심한 후, ‘순간이동’을 활용해 눈 깜빡하는 순간 녹야원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직선거리만으로도 200km가 넘는 먼 거리를 오로지 걸어갔습니다. 이 여정은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탁발도 했을 것이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수많은 설법을 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붓다가 초전법륜을 설하기에 앞서 한 일종의 ‘설법 트레이닝’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녹야원까지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단 한 건의 설법 사례가 전해지는데 이는 권청을 수락한 후, 붓다가 한 첫 설법입니다.
사명외도 우빠까가 보리수 아래를 떠나 출발하는 붓다를 만났습니다. 이때 우빠까의 눈에 붓다의 후광이 밝게 빛나 마치 천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묻습니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맑고 피부색은 청정하다.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해 출가했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누구의 가르침을 즐겨 배우는가?”
“나는 일체를 극복한 자, 일체를 아는 자이다. 일체의 사실에 오염되지 않았고, 일체가 버려졌고 갈애가 부수어져 해탈되었다. 스스로 곧바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
“벗이여,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우빠까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샛길로 사라졌습니다. 우빠까는 붓다의 밝게 빛이 나는 위의에 반해 다가갔지만, 귀의하지 않고 돌아갔으니 성공한 설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붓다는 이미 사념을 극복하고 설법하기로 했기에 녹야원까지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녹야원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최상의 설법 방식을 창조하게 됩니다.
최고의 스승, 인간 붓다
붓다의 설법 방식은 한마디로 대기설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대기설법은 구체적으로 비유설법, 차제설법, 유행설법 등으로 세분화될 수 있습니다. 비유설법이 듣는 사람의 ‘문화’를 고려한 설법이라면, 차제설법은 듣는 사람의 ‘수준’을 고려한 것이고, 유행설법은 듣는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을 고려한 설법입니다. 즉 대기설법은 철저하게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설법인 것입니다. 초전법륜에는 이 대기설법 트레이닝의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따르지 않는다.”
이 유명한 문장은 초전법륜의 서두 부분입니다. 붓다는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 가르침을 설한 것이 아닙니다. 직접 두 발로 길을 걸어 오비구들이 있는 녹야원을 향했습니다. 이는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유행 설법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붓다는 스스로 중도를 깨달았음을 선언하고, 이 중도에 이르는 길을 비유로써 설명합니다. 오비구는 본래 귀족 출신으로, 출가 전에는 쾌락을 즐겼으나 출가 후에는 붓다와 6년간 고행을 함께 수행한 이들입니다. 이들의 경험을 잘 알고 있던 붓다는 중도를 쾌락과 고행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으로 비유했던 것입니다.
실천적 중도의 비유로써 직관적 이해를 얻은 오비구에게 부처님은 첫 번째로 중도에 이르는 길인 팔정도를 설명하고, 두 번째로 팔정도의 시작인 정견에 대해 사성제로 설명합니다. 세 번째로 사성제를 수행하는 체계를 삼전십이행상으로 설명했으니, 이것이 바로 듣는 자의 수준을 고려한 차제설법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스스로 대기설법을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초전법륜이 굴려진 후 온 세상은 기쁨으로 진동했고 동시에 붓다 역시 청정한 법의 눈이 열린 제자의 탄생이 너무나도 기뻐 감흥어를 내뱉었습니다.
“꼰단냐는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
붓다는 제자의 성취가 기쁜 동시에 내용과 형식을 갖춘 언어적 설법 모델인 대기설법의 성과도 기뻤던 것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붓다의 설법이 완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초전법륜이 이루어지기까지, 붓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훈련해 설법 실력이 향상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발전의 밑바탕에는 중생을 향한 깊은 자비심이 있었습니다. 붓다의 모든 제자는 듣는 사람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기설법의 자비심을 꼭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스승, 인간 붓다의 설법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원빈 스님|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스승, 인간 붓다를
만날 수 있는 『마하박가』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부처님의 생애’를 다룬 텍스트는 다양하며, 각기 다른 특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약 그 가운데에서 가장 인간적인 붓다를 만나고 싶다면, 『마하박가』의 제1장 크나큰 다발의 첫 번째 「송출품」부터 네 번째 「송출품」까지를 보아야 합니다. 『마하박가』의 번역자 전재성은 해제에서 이 부분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부처님의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인 정각의 내용과 그 후의 전법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승단의 형성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디가니까야』의 『열반경』과 아울러 가장 믿을 만한 부처님의 생애의 원형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범천의 권청은 왜 일어났을까?
붓다의 첫 설법은 언제였을까요? 많은 이들이 붓다의 첫 설법을 초전법륜으로 알고 있지만, 율장에 따르면 붓다가 정각을 이루신 후 둘째 주에 만난 바라문과의 문답이 붓다의 첫 설법입니다. 어느 날 흥흥거리는 오만한 바라문이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 머무시던 붓다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붓다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고따마여, 어떻게 해서 바라문이 됩니까? 바라문을 만드는 성품들은 무엇입니까?”
“어떠한 사제이든지 악한 원리를 제거하고 흥흥거리지 않고 떪음을 여의고 자제하고, 지혜에 통달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한 자, 세상에서의 융기가 결코 없는 자라면, 이치에 맞게 하느님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리.”
이 문답은 과연 성공적이었을까요? 바라문의 그다음 대답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바라문은 귀의하지 않고 떠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붓다의 두 번째 설법은 정각 후 셋째 주에 이루어집니다. 붓다는 무짤린다 나무 밑에서 해탈의 지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때아닌 커다란 먹구름이 일더니 차가운 바람이 불면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이때 용왕 무짤린다는 고요하고 엄정한 붓다의 모습을 보고 용궁에서 나와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한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뜨거운 열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등에, 모기, 바람, 더위, 뱀과의 접촉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 된다.’
그는 똬리를 틀어 붓다의 몸을 일곱 번 감싸고, 머리 위에 크나큰 후드(hood)를 펼치고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해탈의 지복에 머무는 붓다를 보호했습니다. 그는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탈의 삼매에 들어 있는 붓다의 위의에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바라문 학인의 모습으로 변신해 붓다에게 귀의하고, 법문을 들은 뒤 공경하며 물러났습니다. 붓다의 두 번째 설법은 문답이 없는 위의 설법이었지만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붓다의 세 번째 설법은 정각 후 넷째 주에 이루어집니다. 지나가던 두 명의 상인이 붓다의 위의에 반해 보리죽과 밀환을 공양 올리고, 붓다와 그 가르침에 귀의했습니다. 그들은 최초로 ‘이귀의(二歸依)’를 제창한 불자가 되었고, 이 위의 설법 역시 성공적이었습니다.
붓다의 정각 후 다섯째 주, 붓다의 마음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념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망의 경향을 즐기고 욕망의 경향을 기뻐하고 욕망의 경향에 만족해하면, 이와 같은 도리, 즉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를 보기 어렵다.’
붓다는 정각 이후 세 차례의 설법을 경험했습니다. 그중 문답을 통한 첫 설법은 뚜렷한 성과가 없었지만, 말하지 않고 위의로 보여준 위의 설법은 모두 성공적이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이었는지, 붓다에게 중생을 교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사념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 진리를 가르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 되고 나에게 곤경이 될 것이다.’
이 사념을 알아차린 범천이 깜짝 놀라 붓다를 찾아가 “세상에 남으셔서 법을 설해주십시오”라며 세 번 권청합니다. 왜 세 번이었을까요? 붓다가 범천의 권청을 거듭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중생들이 갈애(渴愛)로 인한 전도몽상(顚倒夢想)에 사로잡혀 있기에 연기의 진리를 체득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그만큼 강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결국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여 이렇게 선언합니다.
“불사의 문은 열렸다. 듣는 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려라.”
녹야원으로 가는 길
‘내가 누구에게 가장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 누가 이 가르침을 신속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권청을 수락한 뒤, 붓다는 이렇게 생각하며 가르침을 전할 첫 번째 대상을 물색했습니다. 처음 떠오른 이는 예전에 함께 수행했던 스승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였지만, 그들은 이미 임종한 상태였습니다. 다음 후보는 고행 시절 함께 수행했던 오비구들이었습니다. 이에 붓다는 의욕적으로 그들을 찾아 녹야원으로 길을 떠납니다.
붓다는 신이 아닙니다. 가르침을 전할 것을 결심한 후, ‘순간이동’을 활용해 눈 깜빡하는 순간 녹야원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직선거리만으로도 200km가 넘는 먼 거리를 오로지 걸어갔습니다. 이 여정은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탁발도 했을 것이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수많은 설법을 했을 것입니다. 이 과정은 붓다가 초전법륜을 설하기에 앞서 한 일종의 ‘설법 트레이닝’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녹야원까지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단 한 건의 설법 사례가 전해지는데 이는 권청을 수락한 후, 붓다가 한 첫 설법입니다.
사명외도 우빠까가 보리수 아래를 떠나 출발하는 붓다를 만났습니다. 이때 우빠까의 눈에 붓다의 후광이 밝게 빛나 마치 천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묻습니다.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맑고 피부색은 청정하다. 벗이여, 그대는 누구를 의지해 출가했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누구의 가르침을 즐겨 배우는가?”
“나는 일체를 극복한 자, 일체를 아는 자이다. 일체의 사실에 오염되지 않았고, 일체가 버려졌고 갈애가 부수어져 해탈되었다. 스스로 곧바로 알았으니, 누구를 스승으로 삼으랴?”
“벗이여,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우빠까는 이렇게 말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샛길로 사라졌습니다. 우빠까는 붓다의 밝게 빛이 나는 위의에 반해 다가갔지만, 귀의하지 않고 돌아갔으니 성공한 설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붓다는 이미 사념을 극복하고 설법하기로 했기에 녹야원까지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그리고 녹야원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최상의 설법 방식을 창조하게 됩니다.
최고의 스승, 인간 붓다
붓다의 설법 방식은 한마디로 대기설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듣는 사람의 근기에 맞는 눈높이 교육을 하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대기설법은 구체적으로 비유설법, 차제설법, 유행설법 등으로 세분화될 수 있습니다. 비유설법이 듣는 사람의 ‘문화’를 고려한 설법이라면, 차제설법은 듣는 사람의 ‘수준’을 고려한 것이고, 유행설법은 듣는 사람이 머무르는 ‘공간’을 고려한 설법입니다. 즉 대기설법은 철저하게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설법인 것입니다. 초전법륜에는 이 대기설법 트레이닝의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따르지 않는다.”
이 유명한 문장은 초전법륜의 서두 부분입니다. 붓다는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 가르침을 설한 것이 아닙니다. 직접 두 발로 길을 걸어 오비구들이 있는 녹야원을 향했습니다. 이는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유행 설법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붓다는 스스로 중도를 깨달았음을 선언하고, 이 중도에 이르는 길을 비유로써 설명합니다. 오비구는 본래 귀족 출신으로, 출가 전에는 쾌락을 즐겼으나 출가 후에는 붓다와 6년간 고행을 함께 수행한 이들입니다. 이들의 경험을 잘 알고 있던 붓다는 중도를 쾌락과 고행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으로 비유했던 것입니다.
실천적 중도의 비유로써 직관적 이해를 얻은 오비구에게 부처님은 첫 번째로 중도에 이르는 길인 팔정도를 설명하고, 두 번째로 팔정도의 시작인 정견에 대해 사성제로 설명합니다. 세 번째로 사성제를 수행하는 체계를 삼전십이행상으로 설명했으니, 이것이 바로 듣는 자의 수준을 고려한 차제설법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스스로 대기설법을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초전법륜이 굴려진 후 온 세상은 기쁨으로 진동했고 동시에 붓다 역시 청정한 법의 눈이 열린 제자의 탄생이 너무나도 기뻐 감흥어를 내뱉었습니다.
“꼰단냐는 궁극적인 앎을 얻었다!”
붓다는 제자의 성취가 기쁜 동시에 내용과 형식을 갖춘 언어적 설법 모델인 대기설법의 성과도 기뻤던 것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붓다의 설법이 완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초전법륜이 이루어지기까지, 붓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훈련해 설법 실력이 향상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발전의 밑바탕에는 중생을 향한 깊은 자비심이 있었습니다. 붓다의 모든 제자는 듣는 사람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대기설법의 자비심을 꼭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스승, 인간 붓다의 설법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원빈 스님|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