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행을 꽃피우는 『화엄경』의 핵심|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
2024-04-23
『화엄경』의 핵심 내용
권탄준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부 명예교수
『화엄경』의 비로자나불
『화엄경』은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석가모니불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깊은 삼매 속에서 침묵한 채로 시방세계로 두루 널리 광명을 비추어 천지만물의 이치를 설한 것이라고 한다.
화엄교학에서는 이 삼매를 ‘해인삼매’라고 해, 『화엄경』을 ‘해인정중일시병현(海印定中一時炳現)’의 설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해인삼매(海印三昧)라고 하는 깊은 선정(禪定)에 들어간 마음의 바다에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가 한꺼번에 비추어 나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부처의 해인삼매 중에서 나타난 세계의 실상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 바로 『화엄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시작에 석가모니불이 처음으로 정각을 성취할 때의 광경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때 세존께서 이 사자좌에 앉아 일체 법에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니, 지혜는 삼세에 들어가 모두 평등해지고, 그 몸은 일체 세간에 충만하고, 그 음성은 시방국토에 널리 이른다.”
이와 같이 일체 법에서 최고의 정각을 성취한 부처의 신·구·의(身口意) 삼업은 우리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이 밖에도 『화엄경』에는 “부처의 몸은 법계에 충만해서 널리 중생들 앞에 나타난다”거나, “부처는 법으로써 몸을 삼아 청정하기가 허공과 같고, 나타내는 모든 형상을 이 법 가운데 들게 한다”라고 하는 등 비로자나불은 법신으로서, 일체의 국토에서 한량없는 부처를 나타내어 법륜을 굴리며 온갖 형상을 나타낸다고 하는 내용이 수없이 많다. 『화엄경』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부처는 바로 이러한 영원불멸의 법을 본질로 하는 비로자나불이다.
법신 비로자나불은 본래 어떠한 색깔도 모양도 없지만 우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진리의 법륜을 굴리고 있다. 무한한 상관관계로써 끊임없이 생멸·변화하면서 존재하고 있는 삼라만상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인연법의 진리를 따라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모습 나름으로 연기의 진리를 설하며, 우리 중생을 깨우쳐주는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지품」에서는 모든 중생, 강·산·바다 등의 국토, 업보, 성문, 독각, 보살, 여래, 지혜, 진리, 허공 등의 천지만물 그대로가 비로자나불이 나타난 것이라 하고 있다. ‘천지만물이 부처로서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하는 말은 이러한 사실을 두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화엄교학에서는 모든 존재의 세계를 ‘법계(法界, dharma-dhātu)’라고 부른다. 연기법에 따라 무한한 상관관계를 맺으면서 법대로 이루어지는 세계라는 뜻이다. 이러한 광대무변한 법계를 그 몸으로 하는 부처가 『화엄경』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바가 비로자나불인 것이다. 『화엄경』의 ‘화엄’이라고 하는 말도 사실 비로자나불의 대지혜의 광명으로 깨끗하고 아름답게 장엄된 화장장엄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비로자나불의 법계 그 자체를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화엄경』은 비로자나불의 지혜로 장엄된 법계를 무대로 해서 펼쳐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대방광불화엄경』이라는 본래의 경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화엄경』은 이러한 영원하고 광대무변한 법신 비로자나불[大方廣佛]을 설하는 것이다.
『화엄경』의 삼매
삼매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의 경계에 집중해 통일되어 있는 경지[心一境性]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경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삼매에 들면 ‘바르게 받는다[正受]’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부처의 경계를 체득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삼매를 내세우는 것은, 부처의 경계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삼매에서 나오는 밝은 지혜에 의해 주체적으로 실증될 수 있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여래현상품」에서 삼매의 본질을 “모든 보살의 삼매 중에는 지혜의 빛이 완전히 밝아서 온갖 부처의 자재한 성품을 능히 알게 된다”라고 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삼매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생명의 세계인 부처의 경계를 스스로 직접적으로 파악하도록 하는 내면적인 사고방식이다. 절대적이며 궁극적인 부처의 경계를 직관하고, 자아의식을 비롯한 습관화된 사고방식을 버리고, 거기에 전심전력해서 몰입하는 삼매를 통해서, 부처의 경계를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합일해 체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행품」에서 어리석음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못함을 떠나는 수행[離癡亂行]을 설하는 가운데, “보살은 삼매에 들어 성스러운 법에 머무른다”라고도 설하고 있다.
『화엄경』은 이렇게 부처가 있는 각각의 장소에서 보현보살을 비롯한 여러 대보살들이 부처의 위신력을 받아 삼매에 들어가고, 그 삼매 속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나타난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로부터 무량한 법계에 들어가는 지혜, 모든 부처의 경계를 성취하는 지혜를 얻고, 중생들이 한량없는 부처의 지혜를 얻도록 하기 위해 다시 삼매에서 나와 부처를 대신해 설법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삼매에 들었다 나와서 행해지는 대보살들의 설법은 그대로 비로자나불이 침묵 속에서 빛을 비추어 만물의 실상을 나타내 보이면서 설하는 법문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華嚴)’이라고 하는 말은 보살행을 꽃피워서 부처의 경계를 아름답게 나타내고, 보살의 만행(萬行)을 닦아서 법계를 장엄한다고 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원래 법신인 부처의 훌륭한 경계를 스스로 체득해서 구현하려고 하는 화엄삼매를 의미하는 것이다.
화엄삼매는 그 세력에 의해 구체적으로는 부처가 행했던 6바라밀과 같은 보살행을 행하게 하고, 여러 가지 방편과 신통 변화를 펼쳐서 자유자재하게 여러 가지 부처의 공덕을 얻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하나의 삼매에 머무는 사람은 각각의 해탈을 체현해서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아름답게 꾸미는 장엄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삼매와 법계
본래 ‘이사무애’, ‘사사무애’, ‘원융무애’, ‘상즉상입’, ‘중중무진 법계연기’ 등을 기본으로 하는 화엄 철학의 토대가 된 『화엄경』의 법계의 광경은 해인삼매라 불리는 비로자나 법신불의 선정 체험 가운데에 나타난 관념적 시각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투철한 삼매 의식의 소산으로, 중생의 일반적인 의식으로 파악된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비로자나불의 삼매 속에서 일체 사물의 본래적 모습인 법계실상(法界實相)이 그대로 나타나고 화엄세계의 모든 장엄이 아름답게 드러난다. 비로자나불의 지혜 광명에 의해 드러난 이 세계의 진실한 모습은,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물이 서로 의존해 있기 때문에 모순과 대립을 초월한 존재 방식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화엄경』은 이러한 상호 의존적인 존재 방식을 작은 티끌이나 하나의 털구멍에 광대한 세계가 들어간다거나, 한 생각에 무량겁을 넣는다고 하는 등의 비유 외에도, 길고 짧음, 크고 작음, 움직임과 고요함, 하나와 많음 등의 차이성을 가진 현상적인 대립 자체가 궁극적 관점에서는 융통무애(融通無碍)하다는 것을 말하는 내용이 수없이 많이 있다.
이것은 깨달은 입장에서 본다면 다양한 차별이 있는 존재의 세계가 그대로 평등하며, 또한 대립하고 있는 것 자체가 실은 하나이어서, 모든 존재는 서로 어떠한 걸림이나 간격 없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서로 통하고 있다[圓融無碍]는 것을 설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하나가 일체이고, 일체가 하나이다(一卽一切 一切卽一)’라고 하거나, ‘상호 동일한 입장에서 서로 영향을 미쳐서, 두루 융통해서 걸림이 없다(相卽相入 融通無碍)’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모든 개별적 존재들이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유기적 전체로 결합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연기법에 의해 형성된 각각의 개체들은 각자 자신의 고유한 모습과 기능을 가지고 차이를 보이면서도 전체적 관련 속에서 대립된 관계를 맺지 않는다[事事無碍]. 그것은 각각의 개체들이 인연법을 따라 끊임없이 다양하게 연기[理事無碍]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개체들은 바로 이러한 존재의 관계망 속에서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전체의 일부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법계의 광경은 깨달은 사람의 마음의 눈에 드러난 세계이지, 결코 무명에 쌓인 중생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삼매로써 파악된 세계를 설하고 있는 까닭은, 부처의 경계라는 것은 중생의 상대적인 분별지 혹은 자기 나름으로 습관화된 사고방식을 버림으로써 보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의 세계, 혹은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결코 지식이나 이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권탄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과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일본 고마자와대학 불교학부 교환연구원, 금강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및 불교문화연구소장・대학원장, 한국불교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명예교수, 한마음선원 부설 대행선연구원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화엄경의 이해』, 『불교의 이해』(공저) 등이 있으며, 『화엄경』 연구에 전념해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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