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확립 경 (2) - 『맛지마니까야』 제1권 중에서 |다시 읽는 경전

2024-11-19

『맛지마니까야』 제1권 중에서

마음챙김의 확립 경 (2)

 Satipaṭṭhāna-Sutta



느낌의 관찰[受隨觀]


3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괴로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안다.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라고 꿰뚫어 안다. 세속을 여읜 즐거운 느낌을 (…) 세간적인 괴로운 느낌을 (…) 세속을 여읜 괴로운 느낌을 (…) 세간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 세속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세속을 여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33.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다른 사람의]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는 요소들과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느낌이 있구나’라고 그의 마음챙김이 잘 확립되나니 그것은 오직 지혜를 증장하게 하고, 오직 마음챙김을 강하게 한다.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마음의 관찰[心隨觀]


34.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탐욕을 여읜 마음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② 성냄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성냄을 여읜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③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④ 수축한 마음을 수축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흩어진 마음을 흩어진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⑤ 고귀한 마음을 고귀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고귀하지 않은 마음을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⑥ 위가 있는 마음을 위가 있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위가 없는 마음을 위가 없는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⑦ 삼매에 든 마음을 삼매에 든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을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⑧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 꿰뚫어 안다.”

35.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요소들과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마음이 있구나’라고 그의 마음챙김이 잘 확립되나니 그것은 오직 지혜를 증장하게 하고, 오직 마음챙김을 강하게 한다.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법의 관찰[法隨觀]


(1) 다섯 가지 장애[五蓋]

36.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떤 [이유로] 제거된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악의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악의가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해서 제거된 악의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것을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해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해서 제거된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해서 제거된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의심이 있을 때, ‘내게 의심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의심이 없을 때 ‘내게 의심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의심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의심이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해서 제거된 의심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37.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다른 사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과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혹은 ‘법이 있구나’라고 그의 마음챙김이 잘 확립되나니 그것은 오직 지혜를 증장하게 하고, 오직 마음챙김을 강하게 한다.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2)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38.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심리 현상들이다. 이것이 심리 현상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심리 현상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관찰하며 머문다.]

39.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3)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

40.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꿰뚫어 안다. 형색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해서 제거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귀를 꿰뚫어 안다. 소리를 꿰뚫어 안다. (…) 코를 꿰뚫어 안다. 냄새를 꿰뚫어 안다. (…) 혀를 꿰뚫어 안다. 맛을 꿰뚫어 안다. (…) 몸을 꿰뚫어 안다. 감촉을 꿰뚫어 안다. (…) 마노를 꿰뚫어 안다. 법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가 어떻게 해서 제거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해서 제거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41.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다른 사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과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이 있구나’라고 그의 마음챙김이 잘 확립되나니 그것은 오직 지혜를 증장하게 하고, 오직 마음챙김을 강하게 한다.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42.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들[七覺支]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있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가 있을 때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가 있을 때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가 있을 때 (…)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가 있을 때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가 있을 때 (…)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가 있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을 때 ‘내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알고, 일어난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어떻게 닦아서 성취하는지 그 원인을 꿰뚫어 안다.”

43.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다른 사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과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이 있구나’라고 그의 마음챙김이 잘 확립되나니 그것은 오직 지혜를 증장하게 하고, 오직 마음챙김을 강하게 한다.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 요소들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5)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4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네 가지 성스러운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여기 비구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45. “이와 같이 안으로 [자기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다른 사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요소들과 사라지는 요소들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이 있구나’라고 그의 마음챙김이 잘 확립되나니, 그것은 오직 지혜를 증장하게 하고, 오직 마음챙김을 강하게 한다.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결어


46.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이와 같이 칠 년을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不還果]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육 년을 닦으면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닦으면, 아니 일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와 같이 일곱 달을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일곱 달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넉 달을 (…) 석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보름을 닦으면, 아니 보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칠 일을 닦으면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를 기대할 수 있다.”

47. “‘비구들이여, 이 길은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니 그것은 곧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다’라고 한 것은 이런 이유로 그렇게 말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 이 글은 『맛지마니까야』 제1권(대림 스님 옮김, 초기불전연구원 刊, 2012년)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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