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국의 불자만을 위한 특별한 안심법문(安心法問), 『천수경(千手經)』|원빈 스님의 경전 이야기

2024-08-06

오직 한국의 불자만을 위한

특별한 안심법문(安心法問),

『천수경(千手經)』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심병(心病)에 빠져 있는 중생


“중생 모두는 심병에 빠져 있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이 세상을 살펴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심병이란 마음속 탐진치입니다. 그런데 이 탐진치 삼독심은 중생을 파멸로 이끄는 씨앗입니다. 안타깝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중생은 기본적으로 심병을 앓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심신을 관리하지 못하면 질병에 시달립니다. 이처럼 심병과 함께 질병이 더해져 병고에 시달리는 삶이 바로 중생의 삶입니다.

최근 이러한 중생의 마음을 흥미롭게 잘 표현한 <인사이드 아웃2>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2>의 주인공은 사춘기를 지나면서 감정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데, 특히 제멋대로인 ‘불안’이라는 감정을 앞세워 부정적 감정의 활동이 활발해집니다. 이런 상황 속 긍정성과 부정성을 대표하는 두 가지 감정인 ‘기쁨’과 ‘불안’이라는 캐릭터는 사사건건 충돌합니다. 기쁨과 불안 중 누가 이겨야 주인공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중생이 모든 고통을 여의어 기쁨을 얻게 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안심법문입니다. 여기에서 안심이란 불안을 다스리면 드러나는 마음입니다. 불안은 만 가지 번뇌가 활발해지는 최적의 무대이기에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이라는 감정이 무작정 쓸모없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불안을 비롯한 수치심, 질투, 부끄러움, 그리고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들은 모두 생존에 필요한 정신 작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순간은 불안이 통제되지 않아 온갖 부정적 감정이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는 그 순간입니다.

심병을 다스리는 방법

“아미타불을 부르는 한마디가 모든 병을 물리친다.”

감산 대사의 심병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조언입니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염불의 방편을 활용해 마음을 잘 보호한다면 어떠한 번뇌도 중생의 삶을 괴롭힐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미타불’의 자리에 다른 수행 방편을 대체할 수도 있는데, 호흡을 바라보는 수식관이나 화두를 잡는 간화선도 좋고, 이웃 종교의 기도법도 좋고, 세상을 향한 헌신적인 봉사의 삶도 좋습니다.

중요한 핵심은 ‘어떤 수행’을 하느냐가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챙김의 힘으로 마음 문을 지키면 자신의 모든 경험을 주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가 마음 수행의 시작이고, 완성으로 나아가는 비결입니다.

샨티데바 보살(寂天, 685~763 C.E.)의 『입보살행론』에서는 세상의 모든 대지가 철 가시로 덮여 있어 고통스럽다면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철 가시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할 일은 단지 자기 신발에 철판을 덧대는 일입니다. 그러면 철 가시가 없는 듯 편안하고 자유로운 여행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마음 문 하나만 잘 지키면 된다’라는 가르침에 대한 비유입니다.

고난의 시간을 견뎌온 한국 불교와 『천수경』

불교의 특징은 다원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가르침이 전달되는 지역의 환경과 문화 등에 따라 가르침이 변화되는 것을 인정하셨습니다. 그 결과 불교는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 각기 다른 개성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한국 불교 역시 어떠한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조선 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500년간의 종교 박해였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불교는 추운 겨울에 피어난 꽃과 같습니다. 여기에 고난은 더해져 곧바로 일제강점기로 인한 정신문화 말살 정책을 겪었고, 해방 이후에는 남북전쟁으로 인한 민족 간의 전쟁도 겪었습니다.

한국 불교는 고려 시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역사적 고난과 함께 쇠퇴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 속에서 불교문화 내면의 변화를 살펴보면 국가와 귀족층을 위한 소수의 불교에서 민중이 함께하는 다수의 불교라는 특성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민중불교는 고난이라는 진흙 속에서 피워낸 자비의 연꽃입니다. 이와 같은 내외적인 무수한 고난의 철 가시 속에서 한국 불교가 지킨 원칙은 단 하나, ‘마음 문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한국 불교의 역작이 바로 『천수경』입니다. 그렇기에 근현대 한국 불교를 『천수경』 불교라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한국 불교만의 안심법문, 『천수경』 보리심 명상

붓다의 8만 4,000 법문은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인 이고(離苦)와 행복해지는 방법인 득락(得樂)에 대한 답변입니다. 그렇기에 붓다의 법문은 이고득락을 통한 안심법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생의 근기가 다양하기에 이고득락의 여정이 다양한 길로 분화했지만 결국 목적지는 안심으로 가는 길입니다.

현재 한국인들이 겪는 심병을 고칠 수 있는 최상의 방편은 바로 이 『천수경』입니다. 한반도가 겪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한국의 고승들이 고민한 결과가 바로 이 『천수경』이고,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며 마음 문을 잘 지켜낸 불자들의 삶 속에서 이고득락의 효능을 검증한 경전이 바로 이 『천수경』입니다.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한국 불교는 굳이 현격한 문화 차이가 있는 다른 나라의 불교를 새롭게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의 불자들은 오랜 세월 강력한 집단 기도를 실천해왔습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지기가 좋은 곳인 사찰 큰 법당에서, 매일 같은 시간대 사시에, 전국의 모든 불자가 다 함께 『천수경』이라는 경전을 독송하며 기도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해야 합니다. 이러한 집단 기도의 문화는 매우 특별한 의미와 효과를 지닙니다.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도반이라는 인연을 형성하고, 이로 인한 동질감을 생성하며, 함께 선을 닦는 동업의 힘으로 마음 문을 굳게 지켜내 고난을 극복하도록 합니다.

『천수경』을 기도하고 공부하며 수행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세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현행 『천수경』은 약본이고 이에 대한 모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천수경』을 기도하고 공부하며 수행할 때 생겨나는 의심이나 견해차는 광본 『천수경』을 기준으로 현행 『천수경』을 이해할 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현행 『천수경』은 보리심을 완성하기 위한 일상의 작법이라는 것입니다. 흔히 『천수경』의 핵심을 ‘신묘장구대다라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관세음보살이 중생에게 선물하는 대비주 수행은 보리심을 빠르게 완성하려는 방편일 뿐입니다. 큰 관점으로 조망할 때 대비주는 보리심 작법의 일부분에 해당하기에 핵심은 대비주가 아닌 ‘보리심’입니다.

셋째는 살아가는 환경이 고난의 환경에서 풍요의 환경으로 변화되었으니 고난 극복의 집단 기도에서 보리심을 훈련하는 집단 명상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한국은 600년간 『천수경』의 집단 기도로 인해 고난의 환경에서 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천수경』을 구고구난(救苦救難)의 교과서가 아닌 보리심을 배워 중생 구제를 실천하기 위한 명상 안내서로 활용해야 합니다.

『천수경』의 모든 문장은 관세음보살의 보리심 명상 가이드입니다. 이를 따라 마음을 훈련한다면 매일 보리심 명상을 반복하게 됨으로써 첫째, 보리심을 발원하고[發菩提心], 둘째, 마음 문을 잘 지켜 보리심을 잃지 않으며[作菩提心], 셋째, 보리심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行菩提心]. 이것이 고난 속 고승들과 불자들이 함께 결집했던 한국만의 수행법인 『천수경』을 통해 마음 문을 지켜 안심에 이르는 길[證菩提心]입니다.


원빈 스님|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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