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속 이미지는 버려야 할 망상|10분으로 배우는 불교

2025-05-14

명상 속 이미지는 

버려야 할 망상


정상교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과 교수



명상을 마치면 그 모든 환상도 함께 버려야 한다

“회복력이 가장 강한 기생충이 무엇인지 아나요? 바로 생각(idea)입니다. 생각은 회복력과 전염성이 강해서 한번 뇌에 고착되면 제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은 꿈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그린다. 마치 ‘스쿠루지 영감’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꿈속에서 특정한 경험을 하게 되면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다. 놀란 감독은 이러한 설정의 개연성과 리얼리티 확보를 위해 흥미진진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하는데 이로 인해 <인셉션>은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상업 영화의 오락성까지 확보한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꿈이라는 무의식 속에서 바꿀 수 있다는 기본 구조는 바른 사유와 선한 행위를 위해 명상 수행을 필요로 하는 불교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꿈속을 드나들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사항을 제시하는데 이 역시 불교 수행자가 경계해야 할 사항과도 매우 닮아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어떤 꿈을 꿀 것인지 미리 내용을 구상한 후 그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만약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투영해 내가 원하는 세상을 꿈속에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은 그곳이 극락이라 믿고 평생 꿈에 머물고 싶어 할 것이다. 현실로 돌아온 후에도 꿈속으로 다시 돌아가려고만 할 것이다. 그야말로 욕망이 빚어놓은 망상의 세상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나 자신이 아는 사람을 꿈의 소재로 쓰지 말라고 주의한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꿈속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자주 했는데 금기 사항을 어기고 두 사람만의 세상을 만들어놓았다. 그 결과 아내는 늘 현실을 부정하고 꿈속을 현실이라고 착각하게 되었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면 ‘잠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늘 현실과 꿈을 구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징표를 가지고 다니며 언제나 자신이 현실 속에 있는지 꿈속에 있는지 점검할 것을 요구한다. 

명상 수행 역시 동일하다. 수행자가 염불이나 호흡, 혹은 화두를 파고들며 대상에 집중하게 되면 평소 경험한 적 없는 정신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그때 수행자는 떠오르는 어떤 현상이나 이미지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명상 수행에 의해 참된 체험을 한 것이라 착각하고 부처님과 여러 보살님을 알현했다,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예언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게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깨달음에 도달했다고 거짓 선언을 하게 되는데 이는 승가에서 쫓겨나는 중죄에 해당한다. 아직 설익은 수행의 경험은 독사의 꼬리를 잡고 독사를 제압했다고 믿는, 나와 중생을 위험으로 이끄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길을 먼저 걸어봤던 스승은 제자의 얼굴만 보고도 그의 상태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단박에 망상을 끊어버리도록 죽비를 내리친다.  

“이놈아, 장작이나 더 패거라!”

명상 속에서 무엇을 봤든 모두 망상일 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명상을 마치면 그 모든 환상도 함께 버려야 한다. 우리는 비바람이 부는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고 있지 명상 속 세상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가(禪家)의 스승이 늘 엄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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