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과 윤회
정상교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과 교수
그때 그랬더라면… 과연 그러할까?
우리는 가끔 가슴을 치며, 혹은 가벼운 미소 속에 ‘그때 그 땅을 샀었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혹은 만나지 말았더라면, 그때 그곳에 갔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 이러한 후회에는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살고 행복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아침에 눈을 떠 회사나 학교까지 가는 데는 나의 의지는 물론 그 의지와 상관없는 너무나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집을 떠나기 전 먹는 아침 음식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생산자의 노력은 물론 극심한 자연재해가 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감사한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교통 시스템에는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얽히고설켜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의 권력자가 전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목적지에 도착했더라도 누군가 인터넷을 해킹해 전산 시스템이 멈춘다면 나의 오늘은 안녕할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 이것이 붓다가 제시한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사라질 때 이것이 사라진다’는 연기법의 기본 구조이다. 마치 인드라망에 달린 구슬처럼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비추고 있기 때문에 삶의 단 한순간, 단 하나의 선택만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선택은 분명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그 선택에는 새로운 원인과 조건이 수없이 많이 형성되기 마련이므로 특정 시점의 선택 항목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한 결과가, 혹은 더 불행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업보를 만들어내는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이 생과 사를 반복해야
그러면 행복과 불행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과거의 특정 선택 때문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욕망과 화냄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마음 작용 어딘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이러한 세 가지 마음 작용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다양한 수행론과 함께 제시했다. 그러한 통찰지를 얻지 못한 마음은 언제나 후회를 낳는 대상에 끌리고, 그 대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고, 그로 인한 후회는 마음에 남아 다음 순간의 나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이번 생에 내가 타고난 여러 환경들은 앞서 언급한 아침 출근길과는 비교도 안 될 복잡한 원인과 조건이 수많은 전생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여기서 불교는 인도의 다른 사상들이 그러하듯이 내 행위(업)와 그 결과(업보)가 미치는 시공간적 범위를 전생과 내생으로 확장한 윤회설을 중요한 교리적 기반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업보를 만들어내는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이 생과 사를 반복해야 한다. 마치 이삿짐을 쌌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해야 하듯이 다시 태어남은 괴롭고 힘든 일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획득한 후 수많은 전생에서 자신이 어떤 이름을 가졌었고 어떤 종족이었고 어떤 용모를 가졌고 무엇을 먹고 어떠한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또다시 태어나 어떤 이름을 가졌고 어떤 종족이었고… 등을 모두 기억하게 되었다고 설했다. 이처럼 윤회는 태어나기 이전과 죽음 이후를 고찰하므로 비과학적인 종교적 상징체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버지니아 의대의 정신과 교수였던 이안 스티븐슨(1918~2007)은 몇몇 어린아이들이 너무나 정확하게 전생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사례를 발견하면서 여러 나라의 어린아이를 상대로 평생 환생을 연구했다. 그 연구 결과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Children who remember previous lives)』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여기서 이안 교수는 전 세계에서 발견된 고작 ‘수천 건’의 사례를 통해 ‘과학자’로서 윤회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엄격하게 아이들의 기억을 검증함으로써 ‘과학자’로서 표면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윤회가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사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등이 있다.
연기법과 윤회
정상교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과 교수
그때 그랬더라면… 과연 그러할까?
우리는 가끔 가슴을 치며, 혹은 가벼운 미소 속에 ‘그때 그 땅을 샀었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혹은 만나지 말았더라면, 그때 그곳에 갔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 이러한 후회에는 그때 그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살고 행복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럴까?
아침에 눈을 떠 회사나 학교까지 가는 데는 나의 의지는 물론 그 의지와 상관없는 너무나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집을 떠나기 전 먹는 아침 음식이 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생산자의 노력은 물론 극심한 자연재해가 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감사한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교통 시스템에는 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얽히고설켜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변 국가의 권력자가 전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목적지에 도착했더라도 누군가 인터넷을 해킹해 전산 시스템이 멈춘다면 나의 오늘은 안녕할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었지만 이것이 붓다가 제시한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사라질 때 이것이 사라진다’는 연기법의 기본 구조이다. 마치 인드라망에 달린 구슬처럼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비추고 있기 때문에 삶의 단 한순간, 단 하나의 선택만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선택은 분명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내가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그 선택에는 새로운 원인과 조건이 수없이 많이 형성되기 마련이므로 특정 시점의 선택 항목 하나를 바꾼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한 결과가, 혹은 더 불행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업보를 만들어내는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이 생과 사를 반복해야
그러면 행복과 불행을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과거의 특정 선택 때문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욕망과 화냄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마음 작용 어딘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이러한 세 가지 마음 작용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다양한 수행론과 함께 제시했다. 그러한 통찰지를 얻지 못한 마음은 언제나 후회를 낳는 대상에 끌리고, 그 대상을 얻기 위해 행동하고, 그로 인한 후회는 마음에 남아 다음 순간의 나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이번 생에 내가 타고난 여러 환경들은 앞서 언급한 아침 출근길과는 비교도 안 될 복잡한 원인과 조건이 수많은 전생에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여기서 불교는 인도의 다른 사상들이 그러하듯이 내 행위(업)와 그 결과(업보)가 미치는 시공간적 범위를 전생과 내생으로 확장한 윤회설을 중요한 교리적 기반으로 내세운다. 따라서 업보를 만들어내는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끝없이 생과 사를 반복해야 한다. 마치 이삿짐을 쌌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해야 하듯이 다시 태어남은 괴롭고 힘든 일이다.
붓다는 깨달음을 획득한 후 수많은 전생에서 자신이 어떤 이름을 가졌었고 어떤 종족이었고 어떤 용모를 가졌고 무엇을 먹고 어떠한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또다시 태어나 어떤 이름을 가졌고 어떤 종족이었고… 등을 모두 기억하게 되었다고 설했다. 이처럼 윤회는 태어나기 이전과 죽음 이후를 고찰하므로 비과학적인 종교적 상징체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버지니아 의대의 정신과 교수였던 이안 스티븐슨(1918~2007)은 몇몇 어린아이들이 너무나 정확하게 전생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사례를 발견하면서 여러 나라의 어린아이를 상대로 평생 환생을 연구했다. 그 연구 결과는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Children who remember previous lives)』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여기서 이안 교수는 전 세계에서 발견된 고작 ‘수천 건’의 사례를 통해 ‘과학자’로서 윤회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엄격하게 아이들의 기억을 검증함으로써 ‘과학자’로서 표면적으로 말하지 못하지만 윤회가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사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