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인생과 어떠한 관계가 있나요? | 한암 스님의 명법문

2023-06-23
한암 스님의 「선문답 21조」 중에서

스스로 깨닫고 닦아서
불도를 이루리


제1문 : 참선은 인생과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참선을 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입니까? 아니면 참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떤 이유가 있습니까?

제1답 : 달마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도요, 도가 곧 선(禪)이다”고 하셨으니, 선(禪)이란 곧 중생의 마음임을 알아야 한다. 대체로 중생심에는 두 가지의 구별이 있으니 첫째는 청정한 마음이요, 둘째는 물든 마음이다. 물든 마음은 무명삼독(無明三毒)의 마음이요, 청정한 마음은 무루진여(無漏眞如)의 본성이다. 무루진여를 염(念)하고 불이(不二)를 수순(隨順)하는 것은 제불(諸佛)과 같아서 동요가 없는 해탈이요, 무명삼독을 쫓아서 많은 악업을 짓는 것은 육취(六趣, 구족계具足戒를 어긴 죄를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여섯 종류로 나눈 것)에 빠져 영겁에 윤회하는 것이니, 청정한 마음은 사람의 바른 길이요 편안한 집이며, 물든 마음은 사람의 험한 길이요 불구덩이이다. 어찌하여 지혜로운 자가 바른 길을 버리고 편안한 집을 비워둔 채 험한 길로 나아가며 불구덩이에 빠져 만겁의 괴로움을 받으려고 하는가. 그대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참선이란 특별난 일이 아니다. 참(參)이란 합(合)함이니, 자성에 합해 청정한 마음을 보양(保養)하고 바깥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음이다.

오직 바라건대 일체중생이 다 함께 진정한 신심을 발해서 무상대도를 깨달아서 다시는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속히 불과(佛果)를 증득하기를 바라고 바라는 바이다.

제2문 : 이미 참선을 하고자 한다면, 어떠한 마음가짐을 지녀야 합니까?

제2답 : 참선을 하는 사람이 이 일단대사(一段大事) 인연을 밝히고자 한다면, 맨 처음 자신의 마음이 부처이며 자신의 마음이 법이어서 구경(究竟)에 다름이 없음을 믿어 철저하게 의심이 없어야 하나니, 만일 이와 같이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면 비록 만겁 동안 수행을 한다 할지라도 마침내 진정한 대도(大道)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보조 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자성(自性) 밖에 법이 있다고 말하여 이러한 마음을 굳건히 고집하면서 불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록 진겁(塵劫: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소신연비(燒身燃臂)하며, 뼈를 부숴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베끼며, 장좌불와(長坐不臥)하고, 일종식(一種食)으로 아침을 재계하며 그리고 일대장경(一大藏經)을 모두 독송하며, 갖가지 고행을 한다 할지라도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격이기에 스스로 수고로움만 더할 뿐이다.”

라고 하셨으니, 이는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그 부처는 곧 외불(外佛)이니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제불(諸佛)이 나의 도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제3문 : 이미 초발심(初發心)의 마음을 지녔다면, 어떻게 공부를 해야 진실한 참구가 됩니까?

제3답 : 상근기(上根機)의 큰 지혜를 가진 이는 하나의 기연과 하나의 경계〔一機一境〕에서 파악해 그대로 활용할 수 있을 테니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만일 참구에 대하여 논한다면 마땅히 조주(趙州)의 ‘무자(無字)’와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와 동산(洞山)의 ‘마삼근(麻三斤)’과 운문(雲門)의 ‘마른 똥막대기〔乾屎厥〕’ 등 아무 재미 없는 말(話頭)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참구하고 또 참구하되 마치 모기가 무쇠소〔鐵牛〕에 앉아 주둥이조차 박을 수 없는 곳에 몸뚱이째 뚫고 들어가듯 해야 한다.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차별심과 털끝만 한 분별심이 그 사이에 동하면, 옛 사람이 말한 “잡독이 마음에 침투하여 지혜를 손상한다” 함이니, 학인은 가장 먼저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나옹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하는 것을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니, 생사의 즈음에 당하여 힘을 다해 화두(話頭)를 들면 생사가 곧바로 다할 것이니, 생사가 곧바로 다한 것을 적(寂)이라고 한다. 적(寂)한 가운데 화두가 없는 것을 무기(無記)라 하고, 적(寂)한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한 것을 영(靈)이라 말하는 것이니,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부서짐이 없고 혼잡됨이 없으면 곧바로 이루어진다.”

고 하셨으니, 학인은 마땅히 이 말을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암 스님(1876∼1951)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禪僧). 오대산 상원사 선원에 주석하며 26년간 산문 밖을 나서지 않고 선(禪)·교(敎)·율(律)을 아우르며 선계일치(禪戒一致)의 실천행을 보여준 수행자. 일제 강점기를 전후해 총 네 차례 교정과 종정 역임

● 이 글은 『한암일발록(漢岩一鉢錄)』 상권(법어 편, 2010년, 오대산 월정사·한암문도회 발행)에서 일부 발췌한 것이다.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