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봉 스님 법문
사바세계를 무대 삼아
한바탕의 멋진 연극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불교에서는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한다. 인도말로 ‘사바(sabha)’는 한문으로 감인(堪忍) 또는 회잡(會雜)으로 풀이되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감인세계(堪忍世界), 잡된 것으로 뒤죽박죽 얽혀 있는 회잡(會雜)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사바세계에 태어난 이상에는 아무리 큰 복을 누릴지라도 잡된 일로 시달리기 마련이요, 인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사바세계라고 해서 괴로움과 번뇌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세계이기 때문에 해탈(解脫)과 행복과 깨달음의 영역으로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괴로움과 번뇌의 결박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사바세계이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해탈과 행복과 깨달음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이 세계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이들은 사바를 활동의 무대로 삼아 삶의 활로(活路)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늘 당부하고 있다.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지게 잘해야 한다.” 이 말속에는 깊은 뜻이 간직되어 있고 모든 법문이 남김없이 들어 있다.
한바탕의 멋진 연극.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어차피 한세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서, 기왕이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산 정신’으로 성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삶의 연극을 멋들어지게 연출하는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 ‘인간 존재의 특이성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생(生)의 회계’를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인간 존재의 특이성은 무엇인가?
인간은 지은 업(業)에 의해 현재의 몸을 받은 한 종류의 중생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중생과 다르다. 그 다른 점에서부터 인간은 인간의 설 자리를 찾아야 한다.
다른 중생과 인간은 어떻게 다른가?
우리 인간을 비롯해 날짐승·길짐승 등의 모든 중생은 자기가 지은 업대로 살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짐승들은 업을 받기만 하지만, 사람은 업을 받는 것과 동시에 새롭게 개척해가는 능력이 있다.
새는 더워도 깃털에 감싸여 살아야 하지만, 사람은 더우면 옷을 벗어버릴 수가 있다. 겨울이 되면 짐승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어야 하지만, 인간은 집 속에서 따뜻하게 생활할 수 있다.
비록 인간들이 자기가 지은 잘못으로 인해 곤란을 당하고 걱정 근심 속에서 살고는 있지만, 한 생각 돌이킬 줄 아는 이 또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통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한 생각 돌이켜볼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한 생각을 돌이켜 지은 업을 기꺼이 받겠다고 할 때, 모든 업은 저절로 녹아내리고,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
그럼 ‘생(生)의 회계’는 어떻게 하는가? 나의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되는가를 분명히 계산해 보아야 한다.
이 세상 살다가 언제 땅 밑으로 들어가는가? 설령 구십·백 살을 산다 해도 기력 있게 사는 것은 잘해야 칠십이니, 사십을 산 사람은 ‘ 이제 삼십 년 남았구나’, 오십을 산 사람은 ‘이제 이십 년 남았구나!’ 이렇게 회계를 내야 한다.
그리고 결심하라.
‘아무래도 이 몸은 죽어 땅 밑에 들어가서 썩어 없어질 운명. 이 몸을 가지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남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고, 나와 남을 함께 살리는 한바탕의 연극을 멋들어지게 하며 살리라.’
이렇게 회계를 하고 결심을 끝냈으면 멋들어지게 사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고 한바탕의 연극을 멋있게 하는 것인가? 춤추고 노래 부르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면서 술 마시고 뛰어노는 것이 멋있게 사는 것인가?
아니다. 비극의 배역을 맡은 명배우는 마음속의 잡된 생각을 모두 비우고 눈짓 몸짓 그 마음까지도 송두리째 슬픔이 되어 연기를 한다. 그저 우는 체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슬픔 그 자체가 되어 눈물을 짓는다. 그렇게 되면 관객은 따라서 눈물을 흘리고 갈채를 보낸다.
사바에 사는 우리에게도 어디에서나 어느 때에나 배역이 주어진다. 그 배역을 온몸으로 소화할 때 우리의 연극은 멋으로 연결된다.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누구나 다 주연의 배역을 맡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연기는 배역을 이탈할 때가 많고, 그때마다 가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며 아우성이다.
무엇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픈가? 그 까닭이 매우 복잡한 듯하지만 ‘사람 아니면 물질’ 때문이다. 사람과 물질 때문에 가슴 아프고, 머리 아프고, 심장과 간장 등에 열이 차는 병에 걸린다. 물질에 대한 애착, 사람에 대한 지나친 갈망, 사랑과 미움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다.
우리가 사바세계에 나올 때 머리 아프고 가슴 아프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빈 몸 빈손으로 옷까지 훨훨 벗고 나왔는데, 사람과 물질에 대한 애착과 망상으로 근심 걱정과 괴로움이 시작된다.
사람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실대로 자기 정성대로 노력하기만 하면 세상은 될 만큼 되는데, 진실도 정성도 모두 놓아버리고 망상이라는 도둑놈에게 붙잡혀 있으니, 어떻게 근심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의 도둑놈들과 함께 살지 말아야 한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도둑놈, 팔만 사천 번뇌 망상과 분별하는 마음의 도둑놈, 이 도둑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파서 사바세계를 무대로 연극 한바탕 멋있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인 노릇 하고 있는 이 도둑은 쫓아내어야만 한다. 근심 걱정은 오히려 도둑을 도울 뿐이다.
기껏 살아봐야 백 년도 못 사는 인생. 인생은 연극이요 이 세상은 연극 무대가 아니더냐!
기왕 이 세상에 나왔으니 근심 걱정 내려놓고 연극 한바탕 멋있게 하며 살아라. 좀 근심되고 걱정되는 일이 있더라도 다 털어버리고, 언제나 쾌활하고 낙관적인 기분으로 활기찬 생활을 해야 한다.
여태껏 생활해온 모든 사고방식과 생활 관념에 잘못이 있으면 텅 비워버려라. 사람과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산 정신으로 활발하고 진실되게 살아가야 한다.
참 생명을 찾을 수 있는 산 정신으로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있게 하기 바란다.
活眼開處 활안개처
水流花開 수류화개
활안이 열린 곳에
물은 흐르고 꽃이 핀다
“할(喝)”
경봉(鏡峰) 스님(1892~1982)
근현대의 고승.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
생전 ‘마음이 곧 부처이다.
견성성불하려면 참선 수행하고 마음을 알아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 이 글은 『행복과 성공을 위한 도담』(경봉 대선사 지음, 도서출판 효림 刊)에 실린 법문 내용 중 일부이다.
참 생명을 찾을 수 있는 산 정신으로 이 사바세계를 무대로 삼아 연극 한바탕 멋있게 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