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이대로의 모습이 부처임을 깨닫기를|나의 불교 이야기

매 순간 

이대로의 모습이 

부처임을 깨닫기를


박원자

불교 전문 작가



문득 떠오른 논문의 주제로 불교가 나의 종교가, 

나의 직업이 되었다

중국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에 불교를 만났다. 졸업 논문을 써야 하는데 뜬금없이 문학에 종교(불교)가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하는 것이 궁금했다. 그걸 주제로 논문을 쓰겠다고 논문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막상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일주일 동안 하루 2시간씩 불교학자 이기영 교수님께 불교 기초 강좌를 듣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토록 흥미롭게 강의를 들은 건 난생처음이었다. 그렇게 오랜 생에 걸쳐 숙연이었을 불교가 나의 종교가 되었고, 그때 문득 떠올랐던 논문의 주제가 직업이 되었다. 그 뒤 한국불교연구원 대학생부에 적을 두며 좋은 도반들을 만났고 함께 공부하며 수련회도 다녔다. 이기영 박사님께 『금강경』, 『육조단경』 등 경전 강의를 들으며 대학 시절을 마무리했다. 


가족 모두 서로의 도반, 

이를 삶에서 가장 감사한 일로 여겨

본격적으로 불교를 만난 것은 30대 중반부터 월간 『해인』에 글을 쓰면서다. 한 달에 한 번 스님들의 초발심 시절인 행자 시절을 취재하면서 수행 이야기를 듣고 글을 썼다. 그러는 동안 아이 둘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가끔 가족들이 취재에 동행하면서 아름다운 절들, 훌륭한 스님들을 친견하는 기회를 가졌다. 큰아이는 고등학생, 작은아이는 중학생 때 금강굴 불필 스님께 붙들려 삼천 배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남편도 그렇게 불자가 되었다. 

오랜 세월 취재를 다닌 결과물로 『나의 행자시절』 세 권이 나왔고, 수행자들에게 인생을 물은 『인생을 낭비한 죄』, 『내 인생을 바꾼 108배』 책이 나왔다. 그리고 가장 최근 수행자들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모정불심』을 출간했다. 이제 아이들이 성장해서 교정을 보아주었고 독자가 되었다.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남편이었다. 그러는 동안 가족 모두가 서로에게 도반이 되었는데, 이를 삶에서 가장 감사한 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수행 정진하며 부처님 일대기를 

마지막 작품으로 쓰겠다는 서원 세워   

불교에 대한 글을 쓰면서 동국대 역경원장을 지내신 월운 스님께 경전을 공부하며 잠시나마 동국대 역경위원으로 불경을 번역한 것도 글을 쓰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몇 년 동안 매주 한 번 봉선사 불경 서당을 오가며 공부하는 동안 불교에 대한 시야가 조금씩 넓어져갔다. 봉선사 법당에서 저녁 예불을 드리며 『반야심경』을 외우던 어느 날, ‘오온개공도일체고액’의 한 구절이 가슴으로 쓱, 들어오던 날의 환희로움을 잊을 수 없다. 

그즈음 ‘1080배 백일기도’를 마치며 적어도 죽을 때까지 100만 배는 하고 죽겠다는 발원을 하며 매달 한 번 삼천 배를 하고, 매일 삼백 배씩 몇 년 동안 정진했던 것도 젊은 날 정진의 기록이다. 도반들과 20여 년 동안 매달 한 번씩 경전 공부를 하고 1박 2일 정진회를 하는 것도 수행을 사랑하게 된 동인이 되었다.  

수행으로 삶을 다져가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이 시대의 유마 대원 장경호 거사』, 인홍 스님의 일대기인 『길 찾아 길 떠나다』, 『혜암평전』을 쓰면서 수행이 한 인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시키는지, 그 아름다움이 다른 동시대의 사람들을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지 배웠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수행자를 만났다. 팔십 세의 노 수행자(해인사 방장 법전 스님)는 마흔여덟의 나에게 나이를 물으시고는 ‘이제 공부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시며 ‘이 뭣고’ 화두를 주셨다. 화두를 들으며 용맹정진하지 못했지만, 스님을 만나 삶과 수행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며 2,500년 전의 부처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수행이 사람을 저렇게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면 열심히 정진하리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고, 부처님 일대기를 마지막 작품으로 쓰겠다는 맑은 서원을 품게 되었다.   

『내 인생을 바꾼 108배』가 출간되고 나서다. 책을 받아들고 제목을 보신 한 비구니 스님께서 진지하게 물었다.

“정말로 인생을 바꾸셨어요?”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경전을 읽었던 시간들이, 수행자들을 만나 삶과 수행의 이야기를 들었던 그 순간이 수행하는 시간이었으며 나를 성숙시켰던 시간이었다고, 인생을 바꾼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나보다는 인생 후반의 지금이, 어제보다는 오늘을 더 성숙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이제 부처님 일대기를 마지막 작품으로 쓰리라 서원했던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때로 굳게 다짐했던 그 발원이 슬쩍 게으름으로 물러서기도 했지만, 요즘 할머니가 되어서 다시 발원을 떠올리고 있다. 사랑하는 손녀에게 부처님은 어떤 분이었으며, 그분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의 손녀가 삶의 고통과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 매 순간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이 이미 완성된 부처라는 것을 깨닫기 바라며, 책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날을 기다린다.  


박원자|숙명여자대학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했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으며 불교 전문 작가로 지난 30여 년 동안 출가 수행자들의 생애와 수행에 대한 글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길 찾아 길 떠나다』, 『경산 스님의 삶과 가르침』, 『내 인생을 바꾼 108배』, 『스님의 첫 마음』, 『인생을 낭비한 죄』, 『나의 행자시절1·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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