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선지식을 통해
내가 터득한 불교
정천구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전 영산대 총장
나는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인연으로 조계사에 다녔고 『금강경』을 접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소사에서 『금강경』 독송을 수행법으로 교화를 펴시던 세기의 선지식 백성욱 박사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불교가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하는지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 터득했다.
몸과 마음
내가 처음으로 터득한 것은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신진대사를 통해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고 한다. 그런데 밝고 깨끗한 마음을 내면 건강하고 밝은 세포가 만들어져 죽은 세포를 대체하고, 악한 마음을 내면 검고 탁한 세포로 바뀐다고 백 박사님은 말씀하셨다. 『금강경』 독송을 시작하니 눈에 띄게 나의 얼굴 모습이 밝아지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백 선생님에 의하면 세포가 바뀌는 기간은 세포에 따라 다르다. 살 세포가 바뀌는 데는 대략 3년, 뼈세포가 바뀌는 데는 그 세 배인 9년 그리고 가장 천천히 바뀌는 뇌세포는 27년, 그러니까 약 30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받은 세포는 완전히 교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30세가 지나면 생물학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30에 자기가 선다(三十而立)고 했고,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40이 넘으면 누구나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부모의 세포에서 독립했으니 자기 얼굴을 부모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 절에 가서 3년 공부한다는 것은 살 세포를 완전히 바꾸고 오는 것이고, 10년 공부는 뼈세포까지 바꾸고 온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진리의 주관과 객관
백성욱 박사님의 「불교 순전 철학」이란 박사 학위 논문에 보면 불교란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인데, 진리의 주관이 부처님(Buddha)이고 진리의 객관이 법(dharma)이라고 한다. 깨달음이란 진리의 주관과 객관이 일치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깨달음은 잠시 그리고 특정한 분야의 깨달음도 있고 길고 영원한 깨달음도 있다. 사람은 경험에만 의지하지 않고 편견과 선입견을 떠나 새로운 것을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어떤 분야에서 우주의 일리(一理)를 깨우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이 한두 번이 아니라 길고 영원히 계속되면 이를 장영심(長永心)이라 한다. 도통의 경지다.
그런데 진리 자체는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진리는 하나일 터인데 그걸 말하는 순간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 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8만 4,000 법문을 하셨지만 “나는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리에 이르는 길을 말씀해주셨지 진리 자체는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목마른 이에게 물을 먹게 하려면 샘물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먹는지 일러주지만 물 자체는 먹어봐야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불교란 실제적 현실에서 구득한 진리를 객관적으로 말한 것이다.
불교에서 상(相)을 비우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상이 무엇인가?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선입견, 편견, 경험에 안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경에서 말씀하는 수자상(壽者相)은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개체(個體)의 영혼불멸설을 부처님께서 부정(否定)하신 것인데 오늘날 수자상은 보통 오래 살려는 생각 등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나는 수자상을 “경험이 있어 뭔가 알았다는 생각”으로 정리하신 백 박사님의 해석에 크게 공감했다. 경험에 치우친 현대 경험과학은 바로 수자상에 빠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정한 과학은 경험만이 아니라 이성과 불성(佛性 또는 靈性)의 개입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경험에 안주하지 말고 경험을 뛰어넘어야 새로운 경지를 열 수 있고 인간에게 유용한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AI(인공지능)는 그 유용성 못지않게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다. 나는 AI의 위험성을 줄이고 인간에게 유익한 AI가 되기 위해서는 AI를 반려견같이 목줄을 매어 잘 길들여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 있디.
상대적 관점
부처님도 진리 자체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하셨지만,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 관해서, 그리고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가에 관해서는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쳐주신 대로 수행하면 된다. 부처님과 별도로 나만의 깨달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 세상의 모든 주장은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 상대적 관점이 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일 수 없는 상대적 관점을 절대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투쟁이 벌어진다. 정치 분야에서 특히 이러한 불교의 관점을 터득하면 이데올로기의 아집에 빠지지 않는다. 정치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변질하게 되면 그 성격상 극단을 치닫게 된다. 우파는 우파의 극단인 파시즘으로 가고 좌파는 좌파의 극단인 스탈린 체제로 가게 된다. 그런 극단적 정치에 빠지거나 동조하지 않으려면 그런 주장들이 상대적 관점이라는 점을 인식하면 된다.
종교에서도 어떤 사람을 그 업적이나 올바른 사상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현상을 볼 때 모든 주장이 상대적 관점임을 터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백성욱 박사님은 상대적 관점을 평화라는 개념을 예로 드셨다. 평화가 인류가 추구해온 중요한 이상이 된 건 전쟁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원하면 그 상대적 개념인 전쟁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역설이 나온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잘난 것은 내가 못났기 때문이니 내 덕이다. 그렇게 상대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잘난 사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고 못난 상대 앞에서도 겸손할 수 있다.
정천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마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대 교수 및 대학원장, 영산대 총장, 서울디지털대 법률행정학과 석좌 교수, 미국 조지메이슨대 방문학자 등을 거쳐 현재는 백성욱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금강경 공부하기』,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 『중국인의 세계관과 대외정책』, 『붓다와 현대정치』 등이 있다.
세기의 선지식을 통해
내가 터득한 불교
정천구
백성욱연구원 이사장, 전 영산대 총장
나는 고등학교 때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인연으로 조계사에 다녔고 『금강경』을 접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소사에서 『금강경』 독송을 수행법으로 교화를 펴시던 세기의 선지식 백성욱 박사님을 친견하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불교가 무엇이고 어떻게 수행하는지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조금 터득했다.
몸과 마음
내가 처음으로 터득한 것은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은 신진대사를 통해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고 한다. 그런데 밝고 깨끗한 마음을 내면 건강하고 밝은 세포가 만들어져 죽은 세포를 대체하고, 악한 마음을 내면 검고 탁한 세포로 바뀐다고 백 박사님은 말씀하셨다. 『금강경』 독송을 시작하니 눈에 띄게 나의 얼굴 모습이 밝아지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백 선생님에 의하면 세포가 바뀌는 기간은 세포에 따라 다르다. 살 세포가 바뀌는 데는 대략 3년, 뼈세포가 바뀌는 데는 그 세 배인 9년 그리고 가장 천천히 바뀌는 뇌세포는 27년, 그러니까 약 30년이 되면 부모로부터 받은 세포는 완전히 교체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30세가 지나면 생물학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30에 자기가 선다(三十而立)고 했고,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40이 넘으면 누구나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부모의 세포에서 독립했으니 자기 얼굴을 부모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옛날 절에 가서 3년 공부한다는 것은 살 세포를 완전히 바꾸고 오는 것이고, 10년 공부는 뼈세포까지 바꾸고 온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진리의 주관과 객관
백성욱 박사님의 「불교 순전 철학」이란 박사 학위 논문에 보면 불교란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인데, 진리의 주관이 부처님(Buddha)이고 진리의 객관이 법(dharma)이라고 한다. 깨달음이란 진리의 주관과 객관이 일치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깨달음은 잠시 그리고 특정한 분야의 깨달음도 있고 길고 영원한 깨달음도 있다. 사람은 경험에만 의지하지 않고 편견과 선입견을 떠나 새로운 것을 열심히 추구하다 보면 어떤 분야에서 우주의 일리(一理)를 깨우치게 된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이 한두 번이 아니라 길고 영원히 계속되면 이를 장영심(長永心)이라 한다. 도통의 경지다.
그런데 진리 자체는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진리는 하나일 터인데 그걸 말하는 순간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 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8만 4,000 법문을 하셨지만 “나는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진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리에 이르는 길을 말씀해주셨지 진리 자체는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목마른 이에게 물을 먹게 하려면 샘물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먹는지 일러주지만 물 자체는 먹어봐야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불교란 실제적 현실에서 구득한 진리를 객관적으로 말한 것이다.
불교에서 상(相)을 비우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상이 무엇인가?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선입견, 편견, 경험에 안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경에서 말씀하는 수자상(壽者相)은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개체(個體)의 영혼불멸설을 부처님께서 부정(否定)하신 것인데 오늘날 수자상은 보통 오래 살려는 생각 등으로 해석해왔다.
그러나 나는 수자상을 “경험이 있어 뭔가 알았다는 생각”으로 정리하신 백 박사님의 해석에 크게 공감했다. 경험에 치우친 현대 경험과학은 바로 수자상에 빠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정한 과학은 경험만이 아니라 이성과 불성(佛性 또는 靈性)의 개입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경험에 안주하지 말고 경험을 뛰어넘어야 새로운 경지를 열 수 있고 인간에게 유용한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AI(인공지능)는 그 유용성 못지않게 핵무기보다 더 위험하다고 한다. 나는 AI의 위험성을 줄이고 인간에게 유익한 AI가 되기 위해서는 AI를 반려견같이 목줄을 매어 잘 길들여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바 있디.
상대적 관점
부처님도 진리 자체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하셨지만, 진리에 이르는 방법에 관해서, 그리고 무엇이 진리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가에 관해서는 누누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가르쳐주신 대로 수행하면 된다. 부처님과 별도로 나만의 깨달음을 추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왔다.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이 세상의 모든 주장은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 상대적 관점이 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일 수 없는 상대적 관점을 절대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투쟁이 벌어진다. 정치 분야에서 특히 이러한 불교의 관점을 터득하면 이데올로기의 아집에 빠지지 않는다. 정치가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변질하게 되면 그 성격상 극단을 치닫게 된다. 우파는 우파의 극단인 파시즘으로 가고 좌파는 좌파의 극단인 스탈린 체제로 가게 된다. 그런 극단적 정치에 빠지거나 동조하지 않으려면 그런 주장들이 상대적 관점이라는 점을 인식하면 된다.
종교에서도 어떤 사람을 그 업적이나 올바른 사상에도 불구하고 단지 이데올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극단적으로 매도하는 현상을 볼 때 모든 주장이 상대적 관점임을 터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백성욱 박사님은 상대적 관점을 평화라는 개념을 예로 드셨다. 평화가 인류가 추구해온 중요한 이상이 된 건 전쟁의 상대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를 원하면 그 상대적 개념인 전쟁을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역설이 나온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잘난 것은 내가 못났기 때문이니 내 덕이다. 그렇게 상대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잘난 사람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고 못난 상대 앞에서도 겸손할 수 있다.
정천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를 마치고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천대 교수 및 대학원장, 영산대 총장, 서울디지털대 법률행정학과 석좌 교수, 미국 조지메이슨대 방문학자 등을 거쳐 현재는 백성욱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금강경 공부하기』, 『금강경 독송의 이론과 실제』, 『중국인의 세계관과 대외정책』, 『붓다와 현대정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