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고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시작한 마음공부|나의 불교 이야기
2024-03-21
불교를 만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최훈동
휴앤심명상상담연구소 소장
나처럼 방황하고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살려면
마음을 공부해야겠다 마음먹어
마음공부를 결심한 것은 고1 때이다. 중2 사춘기의 격랑을 힘겹게 헤엄치다가 법관에서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나에 대한 의문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 ‘삶의 고뇌와 절망, 인간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사춘기 소년에겐 버거운 질문으로 신음하던 중, ‘이렇게 나처럼 방황하고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살자. 그러려면 마음을 공부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순간 어둠 속에서 빛이 생겨났고 중단했던 학교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월정사 수련회 마지막 날 불교야말로
진정한 마음공부법임을 깨닫고 수계 받아
불교를 만난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오실 때마다 새벽에 염주를 돌리며 염불(『천수경』 독경)을 하시어 단잠을 깨곤 했다. 방학 때 외갓집 가면 성당을 데려가주시던 외할머니와 대조적이었다. 어린 시절 교회(성당)는 신식 건물에 맛있는 과자와 선물을 주는 멋진 곳이고, 절은 먼지 묻은 단청이 구식이라는 인상을 주었는데, 할머니 불교, 무당 불교의 모습이 산산조각이 난 것은 고3 여름이었다. 입시 공부의 슬럼프를 이겨낼 겸 절친들과 배낭 산행을 하던 마지막 날 지리산 노고단을 힘들게 올라갔다가 내려오다 기진맥진한 우리는 화엄사에 들러 숙식을 청했다. 스님은 저녁 예불과 새벽 예불을 참여하는 조건으로 방을 내주었는데, 우상숭배라는 선입견으로 마지못해 저녁 예불에 참가한 우리를 스님이 불러 세우고 “학생들, 어디에 절했는가?”라고 질문하셨다. ‘절을 시켜놓고 어디다 절을 하다니 이런 엉뚱한 질문도 있나’ 생각하며 나는 “스님은 어디에 절하셨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나 자신에게 절했노라!” 하시더니 조용히 돌아서 가셨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 불교가 우상이나 믿는 미신 종교가 아니구나. 심오한 무엇이 있구나. 내 언제 불교를 공부해봐야겠다’라고 맘먹고 화엄사를 떠났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이 결심을 일깨운 건 예과 2학년 여름이다. 마로니에 나무에 붙은 여름 수련대회 포스터를 보고 ‘아, 불교를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그 길로 문리대 중앙도서관에서 가장 가벼운 불서를 찾아 드니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다시 한길로 법사의 『반야심경』을 읽은 후 수련회에 참가했다. 중학 시절 천주교 교리 공부를 마치고 영세를 권유받았을 때도, 고교 시절 부흥회 한 달 마치고 세례를 권유받았을 때도, 모두 사양하고 보류했었는데, 월정사 수련회 마지막 날 철야 삼천 배를 마친 후 주저 없이 연비(향으로 팔뚝을 태우는) 수계를 받았다. 불교야말로 진정한 마음공부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와 선불교 오가며
명상의 중요성과 상담의 중요성 설파
마음공부의 요결은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고 척하거나 과장하거나 은폐하는 에고(자아)의 껍질을 부수고 진솔한 자기를 만나는 것이다. 대승 불경을 본격적으로 읽을 때 너무 많은 수사들로 불교의 진면목을 보기가 어려웠기에 50여 년간 불교와 명상을 정신과학적으로 녹여내는 작업은 신격화의 장식들을 걷어내는 제련 작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기영 교수의 『대승기신론』 강의, 운허 노사의 『능엄경』 강의, 탄허 스님의 『화엄경』 강의, 구산 선사로부터 ‘시심마’ 화두, 동헌 노사로부터 『금강경』 사구게를 받았다. 말뚝 신심으로 10일 철야 참선 등을 하다가 본과 2학년 가을, 입산을 결심하고 강원도 암자로 갔다. 경덕 스님으로부터 준제 진언(옴 자레주레 준제 사바하 부림)을 받아 몇 달간 주야로 챈팅 중, 비몽사몽 간에 스님으로부터 대침을 맞기도 하고 검정 물을 토하기도 하고 동남동녀를 만나기도 했는데, 하루는 새벽 입정 중에 관세음보살로부터 부친의 죽음을 예시받았는데 오전 10시경 부친 위독 전보를 받고서 정신 의식의 광대함과 불보살의 가피를 체험했다. 그렇게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오가며 정신과 학회에서는 명상 연구회를 개설해 명상의 중요성을 전도하고 불교계엔 상담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불교 만난 후 삶에 문제 일어날 때마다
바깥을 다루는 대신 내면 살펴보는 삶 살게 돼
IMF 외환 위기 여파로 병원이 부도 위기에 몰려 암담했을 때 미얀마 선사(우자나까 사야도)로부터 위빠사나 집중 지도를 받던 중 ‘바로 지금 여기’라는 현존감에 싸여 ‘고요한 눈물’을 몇 시간 흘리기도 했다. 2003년 여름부터 명상 모임(초기 경전인 『니까야』 강독과 토론)을 회원들과 함께 시작하고 불교의 모태인 힌두이즘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해 명상 대학에서 요가 명상의 정수를 공부했다. 인도 방문 5년째 되던 2015년 1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인 준제 보살의 진언이 티베트에선 따라 보살의 진언(옴 차레 추차레 추레 스와)이고, 이는 힌두교에서 모든 신들의 어머니 타라(Tara) 여신의 만트라(OM TARE TUTARE TURE SVA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스와)에서 비롯됨을 발견한 순간, 대승과 소승이 하나 되고 비로소 불교의 전모가 한 채의 집으로 드러났다. 마음은 순정한 의식 상태로 정렬되어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명료하고 고요해 성성적적(惺惺寂寂) 그대로였다.
부처님의 유훈인 ‘자귀의 법귀의’는 마음공부의 나침반이다. 20년 넘게 『니까야』 명상 모임을 해오면서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새롭게 깨우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법열을 느낀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초기 경전 강독을 통해 대승 경전과 선어록의 핵심들이 『니까야』에 이미 설해져 있음을 알게 되었고 불교와 명상, 정신 치료 삼자가 하나 되었다. 부처님은 최초의 정신과 의사이시고, 나를 거스르고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에고 의식을 깨뜨리고 보다 높은 의식으로 깨어나게 하는 진리임도 깨닫게 되었다.
불교를 만난 후로 삶에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바깥을 다루는 대신 내면을 살펴보는 삶이 되었고, 에고의 껍질들을 만나도 ‘이것이 내 것인가? 이것이 나인가?’라고 내면에 질문해 ‘이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라고 내려놓는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임을 깨우치면 삶은 운명이 아니라 내가 지어내는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지금까지 어떤 그림을 그려왔고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는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음을 깨우쳐주신 부처님의 깊은 은혜에 엎드려 감사드린다.
최훈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수련했다. 한별정신건강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초빙교수(정신치료 슈퍼바이저), 휴앤심명상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명상과 상담 안내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연습』, 『깨달음의 길 숙고명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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