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인문학 강연

2024-11-26

뇌 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


정재승 교수


우주와 나의 연결점을 찾아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가 관광차 들른 작은 도시에서 과학관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작은 도시에 있는 과학관이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요. 한데 그곳에서 큐레이터가 플래닛테리움(planetarium, 천체 투영관)에 그를 데려간 후 ‘생일이 언제인가요?’, ‘고향은 어디죠?’ 등의 질문을 건넸고, 질문에 대답했더니 큐레이터가 천체 투영관의 밤하늘을 그가 태어난 곳, 그가 태어난 날의 하늘로 바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움베르토 에코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그 밤하늘이 허구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정교하게 발달한 과학으로 자신이 태어난 날과 장소를 역추적한 모습에 감동한 거죠.”

정관헌에서 청중을 만난 정재승 교수는 움베르토 에코의 일화로 이날의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이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순간, 그렇기에 한 번쯤 꼭 돌아가고 싶었던 인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할 것”이라며 이것을 조금이나마 가능하게 해주는 과학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우리의 감성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열두 발자국』은 과학과 사람, 그리고 삶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과학의 개념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개념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실험의 산을 넘으면 생명의 경이로움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인간이 절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해요. 그 정도로 자연법칙은 정교해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에 그 감탄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야기를 이번 강연에서 나누고 싶었고요.”


내 인생, ‘새로 고침’ 할 수 있을까

정재승 교수는 책을 출간한 후 한 독자로부터 ‘인생에서 ‘새로 고침’ 하고 싶은 순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다며 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뇌의 무게는 약 1.4kg입니다. 용량으로 보자면 1,400cc 정도입니다. 뇌가 크면 머리가 더 좋을까요?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크게 상관없어요. 코끼리는 우리보다 뇌가 크지만 우리보다 지능은 낮죠. 인간의 두개골은 뇌를 보호하기 위해 뇌를 완전히 덮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물이 들어 있어요. 때문에 머리가 흔들리고 부딪혀도 물이 완충 역할을 해 뇌 손상이 최소화됩니다. 뇌는 통점도 없어요.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죠. 그런데 이 작은 뇌가 우리 신체 기관 중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23%나 되죠.”

한데 몸은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우리 인체 시스템은 꽤 효율적이어서 되도록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같은 결과를 얻으려 한다. 에스컬레이터 등의 기기가 만들어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즉 인간은 본능적으로 효율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도 이러한 본능 때문이에요. 한데 편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곧 우리의 습관이 됩니다. 문제는 습관이 본질적으로 뇌 에너지를 가장 적게 쓰도록 형성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거나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싶으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습관을 고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죠.”

정재승 교수는 “담배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폐암에 걸리는 것”이라며 “하지만 일이 발생한 후 깨달으면 늦는다. 가장 좋은 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정신이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을 상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폐암에 걸린 기분을 폐암에 걸리지 않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죽음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시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대면하면 그 순간부터 잘 살 수 있어요. 내 삶이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은 삶이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거죠. 20대 때는 저도 죽음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대 중반이 되니 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어요. 남은 시간을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고 고마운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졌죠. 이렇게 뇌의 인식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새로 고침’ 하는 겁니다.”


우리 삶을 모두 뇌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습관을 이야기한 정재승 교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 가정에서 부모들은 종종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재승 교수는 “사실 열 손가락을 모두 같은 강도로 깨물지 않는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하며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많은 자녀들이 여러 이유로 부모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한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자식의 입장이 타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아니라고 하지만 자식은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뇌에는 인슐라(insula)라는 영역이 있는데 이것으로 인해 생존 확률이 높아집니다. 여기서는 사람은 자신이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지 등을 모니터링합니다. 즉 이 뇌가 어릴 때 하는 일은 부모의 행동과 선택을 기계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진실이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등한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을 자식들이 감지하고 그것으로 상처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의 이러한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부모가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식은 부모의 사과 앞에 눈물을 흘려요. 우리 뇌에는 나와 부모, 나와 자식을 거의 동일시 여기는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뇌를 살펴보면 서양의 경우와 달리 나를 생각하는 영역과 부모를 생각하는 영역이 아주 가깝게 붙어 있어요. 이 점이 좋기도 하지만 많은 갈등의 시작이기도 해요. 여러분은 인생에서 누구에게 가장 많이 화를 냅니까?”

정재승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통제하고 싶은 사람에게 화를 낸다고 이야기했다. 바꿔 말하면 상황을 통제하고 싶은 사람이 화를 낸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즉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화를 잘 내지 않는다.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화를 내는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아요. 원시사회에서는 통했을지 모르죠. 진화적으로, 그 습관이 현대인에게까지 남아 있는 거예요. 사실 화를 낸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죠. 화병이 나는 이유는 타인에게 화를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명하게 풀지 못해서입니다. 내가 타인에게 화를 내면 뜨거운 석탄을 그저 남에게 옮기는 것밖에 안 돼요. 화는 내려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운동이 필요한 것이고요.”

물론 뇌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마음은 가슴이 아닌 뇌에 있다. 정재승 교수는 “뇌가 하는 일은 몸으로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라며 “우리 뇌는 아주 정교합니다. 그 정교한 뇌가 마음을 형성하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마음 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뇌는 선천적 영향을 45% 정도 받고, 55%는 후천적 영향을 받습니다. 즉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과 후천적으로 받은 교육, 환경, 대면하는 사람들, 그것이 만들어낸 총체적 자아가 처리되는 곳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뇌를 들여다보려 하는 것이지요”라고 덧붙였다.

뇌를 통해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는 강의를 한 정재승 교수. 그는 삶과 뇌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노력을 통해 삶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이 글은 덕수궁관리소에서 ‘정관헌에서 명사와 함께’ 시리즈로 기획한 강연 중 카이스트(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 : 뇌 과학에서 삶의 성찰을 얻다’ 강연 내용을 본지에서 취재해 정리한 것이다.

취재·글|황정은(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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