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보살의 지혜로서,
스승의 지혜로서
남카 스님 편
함영 작가

온라인 강의 중인 남카 스님

빠알리-산스크리스트 전통 비구 교류 프로그램 중 영축산에서 3개국의 스님들과 논쟁하는 모습
지혜를 개발하고 깨달음을 일깨우는 최고의 방편, 논쟁
“A와 B, 두 법이 있다고 할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히는 방법으로 4가지가 있어요. 삼구와 사구, 동의, 모순인데, 예를 들어 금과 반지의 관계는 어떨까요? (…) 금이면서 반지인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없으면 금과 반지는 ‘모순’이에요. 둘 다 있으면 ‘동의’이고, 하나만 충족되면 ‘삼구’, 둘 다 충족되면 ‘사구’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럼 정화심 보살님, 사구 사례를 들어보실래요?”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스님의 질문이 시작된다. 현장뿐 아니라 온라인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름은 없고 번호만 있으신, 3110번 분도 사례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이렇듯 강의 중 불시에 수시로, 무작위로 질문하는 스님의 전략으로 학생들은 잠시 존다거나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질문받기를 두려워해선 안 되고, 질문하기를 주저해서도 안 되는 것이 기본 방침인 이곳의 수업은 그 내용 또한 여느 불교대학과는 사뭇 다르다. 분명 불교수업인데, 혹여 철학과의 논리학 과목을 잘못 수강한 것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해진다.
“논리학이 맞습니다. 논리학은 불교에서 정말 필요하고 중요해요. 과학에선 기계나 실험에 의지해 실상을 판단하잖아요. 티베트 불교에선 논리를 바탕으로 인식에 대해 계속 파고 들어가면서 공부해요. 그러면서 지혜가 개발되고, 그 지혜와 논쟁으로써 명확한 인식과 깨달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티베트 불교의 특징 중 하나가 ‘딱셀’이라는 논쟁(토론)인데, 공부의 최고 방법이에요. 그래서 모든 티베트 사원에선 논쟁을 합니다. 망명 전까진 대표적인 사찰 정도만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14대 존자님(달라이 라마)께서 어떻게 변화시켰냐 하면, 사찰마다 전부 논리학을 공부하게 했어요.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게했고, 그것도 모자라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딱셀을 하죠.”
삼학(계·정·혜)을 설하고 실천하라는 뜻을 담아 달라이 라마가 친히 이름지어준 티베트 사원, 삼학설행사. 이곳의 주지인 남카 스님은 좀 더 체계적이고 전통적인 불교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작년에 4년 코스의 불교대학을 설립했다. 공부의 방향과 목표는 불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진정한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젠 부모님 따라 절에 다닌다 해서, 초파일에 절에 간다 해서, 혹은 절에서 49제를 치뤘다 해서 불자라고 하기보단 불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한 다음에 내가 좋아 선택한 불자여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존자님께선 ‘21세기 불자’가 돼야한다고 늘 강조해 말씀하세요.”
말로 하는 발심이 진심이 되기까지
남카 스님의 기상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어제는 새벽 2시 반에 일어났고, 오늘은 아침 7시에 기상했다. 불교대학의 강의를 전담하고 작년부터는 법당 일까지 손수 챙기다보니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정하기 어렵다.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성격 탓에 몇 시가 됐든 눈이 떠지면 그때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발심’이다. 중생을 위해 성불하겠다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 보리심은 성불로 가는 첫 번째 문이다.
“발심한지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솔직히 어릴 땐 무슨 발심이 있겠어요. 스승이 시키니까 그냥 믿고 따라할 뿐 진심 없이 하는 거죠. 그런데 계속 듣고 배우니까 발심에 대한 지식이 생기잖아요. 거기에 스승의 가르침 따라 보리심 명상도 하고 계속 수행하다보면 경험이 쌓이면서 진심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럼으로써 차차 진심이 되고 발심으로 이어지죠. 그러니까 처음부터 쉽게 되려는 욕심 내려놓고 차근차근 가면 돼요.”
발심과 함께 기도와 명상을 하는 것이 스님의 가장 중요한 첫 일과이다. 7살에 출가해 절에서 성장한 스님에겐 20년 넘게 한방에서 지낸 은사스님을 비롯해 40분이 넘는 법맥 스승들이 있다. 매일 그분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리며 관상하고 기도하며 진언을 한다. 사실 진언은 특정시간 외에도 거의 종일 달고 살다시피 한다.
어릴 때부터 스님에게 가장 친근하고 힘이 되어준 진언은 문수보살 진언이다. 매일 일정 분량의 경전을 암기해야했던 어린 나이에도, 수백 명 스님들 앞에서 강의해야 했던 20대 청년기에도, 티베트 불교학 최고 학위에 해당되는 게셰하람빠의 자격을 갖추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문수보살 진언은 언제나 스님과 함께했다. 그리고 삼학설행사의 불교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러한 진언을 잊지 않는다.
“문수보살은 그 자체가 붓다의 지혜예요. 지혜는 눈으로 볼 수 없잖아요. 그런 지혜가 볼 수 있을 정도의 형태로 나타나면 그것이 문수보살이에요. 그래서 공부의 씨앗을 심거나, 지혜가 좀 더 밝아지기 위해 문수보살 진언을 외우죠. 물론 상황에 따라 집중하는 진언이 달라지지만 평생 동안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 진언부터 외워요.”
문수보살 진언을 독송할 때는 남다른 요령이 필요하다. “옴아라파차나디”를 반복해 읊다가 마지막 횟수에서 끝 글자인 ‘디’자만 한 호흡에 반복해 소리를 내야한다.
“이때 100회를 한 호흡에 하면 효과가 크다고 해서 저는 ‘디’자를 4개씩 묶어 디디디디-디디디디-, 하고 발음하면서 이렇게 25번씩 합니다. 그러면 좀 더 쉽게 한 호흡에 백독이 되고, 순식간에 천 독도 되죠. 티베트는 대개 밀교 수행을 하는데, 밀교뿐 아니라 화엄경이나 다른 논서에도 보면 어떤 부처님도 ‘믿음만으로 모신다’라고 되어있어요. 물이 깨끗하면 달 모양이 밝게 비춰 나타나잖아요. 안 깨끗하면 안 나타나잖아요. 그러니까 달이 문제 아니고 물이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을 깨끗이 하면 부처님 누구든 초대할 수 있어요. 단, 밀교에선 신심만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을 인식해야 돼요. 그러한 상태에서 원하는 부처님을 관상으로 모셔와 진언을 외웁니다.”

날란다 코스의 불교대학 수강생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보살계를 받는 모습
삼학설행사의 활동 보고를 위해 친견한 달라이 라마와 함께한 모습
보리심과 공성에 대한 인식으로
밀교 수행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 ‘보리심’과 ‘공성’에 대한 인식이다. 보리심을 바탕으로 공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어떤 부처든 그 속에 모셔와 수행할 수 있다. 그러기위해선 관정을 통해 법맥을 받아야한다. 관정은 해당 수행을 할 수 있게끔 허락해주는 면허와 같다. 한편 약속이기도 하다. 목숨처럼 지켜 그 수행을 하겠다는 약속….
“제가 매일 4~5시간씩 수행하는 것도 그러한 약속 때문이에요. 수행을 하다보면 힘들고 마음만큼 잘 안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예전에 제겐 ‘자비’에 대한 문제가 있었어요. 자비는 모든 수행의 중심이에요. 우리가 어떤 명상과 기도를 하든지 간에 왜 하나요? 일체중생을 깨닫게 하겠다는 발심문에 그 이유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수행은 기본적으로 자비수행이 깔려있어요. 그만큼 자비가 중요한데, 자비심도 처음부터 진심이 되긴 힘들어요. 처음엔 말로 하다가 진심까지 될 수 있게끔 노력해야 돼요. 그런데 화가 나거나 불만이 생기거나 마음이 위축되면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수행에 장해가 됩니다. 제 경우는 그럴 때 가장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모기가 올 때마다 피를 내줬어요. 모기가 배가 고파 내게 온 거니까 당연히 손님으로서 배를 채워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 경우는 내가 고통을 겪을만하고 참을 만하니까 모기에게 물리는 게 힘들지 않았는데, 중국만 떠올리면 명상 자체가 완전히 깨져버리곤 했어요.”
더구나 스님의 집안은 망명 전 중국에게 유독 심한 핍박을 받았던 지라 오죽하면 아버지가 술만 조금 마셔도 “중국인들 관절 마디마디를 잘라 다 먹어치워도 부족하다”고 할 정도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윗세대를 통해 중국의 핍박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망명 2세로서, 스님에게 중국이라는 존재는 수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곤 했다.
“그럴 때면 너무 힘들어 잠을 못 잤어요. 그런데 존자님이 <람림>에 대해 말씀하실 때 탐욕과 분노, 이기심이 얼마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지 엄청나게 강조하세요. 그리고 중국에게 심한 탄압과 고통을 겪더라도 화로 대응하고 적으로 만들면 어느 것에도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욱 자비심 내고 공부해서 자신의 이로움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 말씀하시니까, 계속 듣고 수행하다보니 지금은 중국을 생각해도 아무렇지 않아졌죠. 저 어렸을 땐 타 종파에 대한 부정심도 정말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타 종파뿐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람림>과 존자님 덕이에요.”
낯선 타국에서 마음잡고 정착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언어장벽의 문제도 컸지만, 인도 절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요청하는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무엇보다 컸다. 기회만 되면 ‘달라이 라마 오피스’의 비서관에게 한국에 갈 수 없는 이유와 애로사항을 토로하곤 했다.
“존자님은 제자들에겐 무척 엄격하세요. 무엇보다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자신이 책임 맡은 절의 사정에 대해 밝지 못하면 방장 스님이라고 예외가 없으세요. 호통 한번 치시면 스님들이 허리를 펴지 못할 만큼 긴장하고 떨어요. 한번은 존자님이 ‘텐진 남카, 한국 가서 뭐 어려운 거 있나?’라고 물으시는데 제가 바로 ‘전혀’ 없습니다, 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렇게 답한 제 자신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죠. 존자님 앞에선 제 마음과 상관없는 답이 그렇게 나와 버리곤 해요.”(웃음)
불교대학을 열고 강의를 시작하면서부터 남카 스님에겐 새로운 고충이 생겼다. 인도 절에서 티베트 스님들이 공부하는 방식대로 한국의 불자들을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하루하루 실감하기 때문이다. 기초과목을 보강하고 최대한 쉽게 설명해도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볼 때면, 전 세계인 누구나 쉽고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법문하시는 달라이 라마의 존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젠 아재 농담과 된장찌개가 고향의 것처럼 익숙해져 제2의 모국이 된 한국에서 남카 스님은 그런 스승의 지혜를 떠올리며, 문수보살에게 더욱 쉽게 불법을 설명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요청하며 이렇게 진언한다.
“옴아라파차나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
함영|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기획 및 출판 등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문수보살의 지혜로서,
스승의 지혜로서
남카 스님 편
함영 작가
온라인 강의 중인 남카 스님
빠알리-산스크리스트 전통 비구 교류 프로그램 중 영축산에서 3개국의 스님들과 논쟁하는 모습
지혜를 개발하고 깨달음을 일깨우는 최고의 방편, 논쟁
“A와 B, 두 법이 있다고 할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밝히는 방법으로 4가지가 있어요. 삼구와 사구, 동의, 모순인데, 예를 들어 금과 반지의 관계는 어떨까요? (…) 금이면서 반지인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에 없으면 금과 반지는 ‘모순’이에요. 둘 다 있으면 ‘동의’이고, 하나만 충족되면 ‘삼구’, 둘 다 충족되면 ‘사구’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럼 정화심 보살님, 사구 사례를 들어보실래요?”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스님의 질문이 시작된다. 현장뿐 아니라 온라인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이름은 없고 번호만 있으신, 3110번 분도 사례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이렇듯 강의 중 불시에 수시로, 무작위로 질문하는 스님의 전략으로 학생들은 잠시 존다거나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질문받기를 두려워해선 안 되고, 질문하기를 주저해서도 안 되는 것이 기본 방침인 이곳의 수업은 그 내용 또한 여느 불교대학과는 사뭇 다르다. 분명 불교수업인데, 혹여 철학과의 논리학 과목을 잘못 수강한 것이 아닌가 싶어 어리둥절해진다.
“논리학이 맞습니다. 논리학은 불교에서 정말 필요하고 중요해요. 과학에선 기계나 실험에 의지해 실상을 판단하잖아요. 티베트 불교에선 논리를 바탕으로 인식에 대해 계속 파고 들어가면서 공부해요. 그러면서 지혜가 개발되고, 그 지혜와 논쟁으로써 명확한 인식과 깨달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티베트 불교의 특징 중 하나가 ‘딱셀’이라는 논쟁(토론)인데, 공부의 최고 방법이에요. 그래서 모든 티베트 사원에선 논쟁을 합니다. 망명 전까진 대표적인 사찰 정도만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14대 존자님(달라이 라마)께서 어떻게 변화시켰냐 하면, 사찰마다 전부 논리학을 공부하게 했어요.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게했고, 그것도 모자라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딱셀을 하죠.”
삼학(계·정·혜)을 설하고 실천하라는 뜻을 담아 달라이 라마가 친히 이름지어준 티베트 사원, 삼학설행사. 이곳의 주지인 남카 스님은 좀 더 체계적이고 전통적인 불교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작년에 4년 코스의 불교대학을 설립했다. 공부의 방향과 목표는 불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진정한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젠 부모님 따라 절에 다닌다 해서, 초파일에 절에 간다 해서, 혹은 절에서 49제를 치뤘다 해서 불자라고 하기보단 불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한 다음에 내가 좋아 선택한 불자여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존자님께선 ‘21세기 불자’가 돼야한다고 늘 강조해 말씀하세요.”
말로 하는 발심이 진심이 되기까지
남카 스님의 기상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어제는 새벽 2시 반에 일어났고, 오늘은 아침 7시에 기상했다. 불교대학의 강의를 전담하고 작년부터는 법당 일까지 손수 챙기다보니 기상시간을 일정하게 정하기 어렵다. 한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성격 탓에 몇 시가 됐든 눈이 떠지면 그때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발심’이다. 중생을 위해 성불하겠다는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 보리심은 성불로 가는 첫 번째 문이다.
“발심한지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솔직히 어릴 땐 무슨 발심이 있겠어요. 스승이 시키니까 그냥 믿고 따라할 뿐 진심 없이 하는 거죠. 그런데 계속 듣고 배우니까 발심에 대한 지식이 생기잖아요. 거기에 스승의 가르침 따라 보리심 명상도 하고 계속 수행하다보면 경험이 쌓이면서 진심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어요. 그럼으로써 차차 진심이 되고 발심으로 이어지죠. 그러니까 처음부터 쉽게 되려는 욕심 내려놓고 차근차근 가면 돼요.”
발심과 함께 기도와 명상을 하는 것이 스님의 가장 중요한 첫 일과이다. 7살에 출가해 절에서 성장한 스님에겐 20년 넘게 한방에서 지낸 은사스님을 비롯해 40분이 넘는 법맥 스승들이 있다. 매일 그분들의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리며 관상하고 기도하며 진언을 한다. 사실 진언은 특정시간 외에도 거의 종일 달고 살다시피 한다.
어릴 때부터 스님에게 가장 친근하고 힘이 되어준 진언은 문수보살 진언이다. 매일 일정 분량의 경전을 암기해야했던 어린 나이에도, 수백 명 스님들 앞에서 강의해야 했던 20대 청년기에도, 티베트 불교학 최고 학위에 해당되는 게셰하람빠의 자격을 갖추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문수보살 진언은 언제나 스님과 함께했다. 그리고 삼학설행사의 불교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도 그러한 진언을 잊지 않는다.
“문수보살은 그 자체가 붓다의 지혜예요. 지혜는 눈으로 볼 수 없잖아요. 그런 지혜가 볼 수 있을 정도의 형태로 나타나면 그것이 문수보살이에요. 그래서 공부의 씨앗을 심거나, 지혜가 좀 더 밝아지기 위해 문수보살 진언을 외우죠. 물론 상황에 따라 집중하는 진언이 달라지지만 평생 동안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 진언부터 외워요.”
문수보살 진언을 독송할 때는 남다른 요령이 필요하다. “옴아라파차나디”를 반복해 읊다가 마지막 횟수에서 끝 글자인 ‘디’자만 한 호흡에 반복해 소리를 내야한다.
“이때 100회를 한 호흡에 하면 효과가 크다고 해서 저는 ‘디’자를 4개씩 묶어 디디디디-디디디디-, 하고 발음하면서 이렇게 25번씩 합니다. 그러면 좀 더 쉽게 한 호흡에 백독이 되고, 순식간에 천 독도 되죠. 티베트는 대개 밀교 수행을 하는데, 밀교뿐 아니라 화엄경이나 다른 논서에도 보면 어떤 부처님도 ‘믿음만으로 모신다’라고 되어있어요. 물이 깨끗하면 달 모양이 밝게 비춰 나타나잖아요. 안 깨끗하면 안 나타나잖아요. 그러니까 달이 문제 아니고 물이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을 깨끗이 하면 부처님 누구든 초대할 수 있어요. 단, 밀교에선 신심만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을 인식해야 돼요. 그러한 상태에서 원하는 부처님을 관상으로 모셔와 진언을 외웁니다.”
날란다 코스의 불교대학 수강생들이 온·오프라인으로 보살계를 받는 모습
삼학설행사의 활동 보고를 위해 친견한 달라이 라마와 함께한 모습
보리심과 공성에 대한 인식으로
밀교 수행에서 기본이 되는 것이 ‘보리심’과 ‘공성’에 대한 인식이다. 보리심을 바탕으로 공성에 대한 인식이 생기면 어떤 부처든 그 속에 모셔와 수행할 수 있다. 그러기위해선 관정을 통해 법맥을 받아야한다. 관정은 해당 수행을 할 수 있게끔 허락해주는 면허와 같다. 한편 약속이기도 하다. 목숨처럼 지켜 그 수행을 하겠다는 약속….
“제가 매일 4~5시간씩 수행하는 것도 그러한 약속 때문이에요. 수행을 하다보면 힘들고 마음만큼 잘 안 되는 순간들이 있는데, 예전에 제겐 ‘자비’에 대한 문제가 있었어요. 자비는 모든 수행의 중심이에요. 우리가 어떤 명상과 기도를 하든지 간에 왜 하나요? 일체중생을 깨닫게 하겠다는 발심문에 그 이유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수행은 기본적으로 자비수행이 깔려있어요. 그만큼 자비가 중요한데, 자비심도 처음부터 진심이 되긴 힘들어요. 처음엔 말로 하다가 진심까지 될 수 있게끔 노력해야 돼요. 그런데 화가 나거나 불만이 생기거나 마음이 위축되면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수행에 장해가 됩니다. 제 경우는 그럴 때 가장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모기가 올 때마다 피를 내줬어요. 모기가 배가 고파 내게 온 거니까 당연히 손님으로서 배를 채워야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 경우는 내가 고통을 겪을만하고 참을 만하니까 모기에게 물리는 게 힘들지 않았는데, 중국만 떠올리면 명상 자체가 완전히 깨져버리곤 했어요.”
더구나 스님의 집안은 망명 전 중국에게 유독 심한 핍박을 받았던 지라 오죽하면 아버지가 술만 조금 마셔도 “중국인들 관절 마디마디를 잘라 다 먹어치워도 부족하다”고 할 정도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윗세대를 통해 중국의 핍박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망명 2세로서, 스님에게 중국이라는 존재는 수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곤 했다.
“그럴 때면 너무 힘들어 잠을 못 잤어요. 그런데 존자님이 <람림>에 대해 말씀하실 때 탐욕과 분노, 이기심이 얼마나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지 엄청나게 강조하세요. 그리고 중국에게 심한 탄압과 고통을 겪더라도 화로 대응하고 적으로 만들면 어느 것에도 도움 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욱 자비심 내고 공부해서 자신의 이로움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계속 말씀하시니까, 계속 듣고 수행하다보니 지금은 중국을 생각해도 아무렇지 않아졌죠. 저 어렸을 땐 타 종파에 대한 부정심도 정말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타 종파뿐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람림>과 존자님 덕이에요.”
낯선 타국에서 마음잡고 정착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언어장벽의 문제도 컸지만, 인도 절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요청하는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과 책임감이 무엇보다 컸다. 기회만 되면 ‘달라이 라마 오피스’의 비서관에게 한국에 갈 수 없는 이유와 애로사항을 토로하곤 했다.
“존자님은 제자들에겐 무척 엄격하세요. 무엇보다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자신이 책임 맡은 절의 사정에 대해 밝지 못하면 방장 스님이라고 예외가 없으세요. 호통 한번 치시면 스님들이 허리를 펴지 못할 만큼 긴장하고 떨어요. 한번은 존자님이 ‘텐진 남카, 한국 가서 뭐 어려운 거 있나?’라고 물으시는데 제가 바로 ‘전혀’ 없습니다, 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렇게 답한 제 자신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죠. 존자님 앞에선 제 마음과 상관없는 답이 그렇게 나와 버리곤 해요.”(웃음)
불교대학을 열고 강의를 시작하면서부터 남카 스님에겐 새로운 고충이 생겼다. 인도 절에서 티베트 스님들이 공부하는 방식대로 한국의 불자들을 지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하루하루 실감하기 때문이다. 기초과목을 보강하고 최대한 쉽게 설명해도 어려워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볼 때면, 전 세계인 누구나 쉽고 핵심을 이해할 수 있게 법문하시는 달라이 라마의 존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이젠 아재 농담과 된장찌개가 고향의 것처럼 익숙해져 제2의 모국이 된 한국에서 남카 스님은 그런 스승의 지혜를 떠올리며, 문수보살에게 더욱 쉽게 불법을 설명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요청하며 이렇게 진언한다.
“옴아라파차나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디…….”
함영|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빅이슈 코리아』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기획 및 출판 등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