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닦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 수행 첫걸음

2023-11-28
마음수행 어떻게 할 것인가?

서광 스님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마음과 수행
마음 수행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마음은 뭐고 수행은 뭘 의미하는지, 마음과 수행이라고 하는 말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 말로 마음이 뭐고 수행이 뭔지를 안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 수행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마음과 수행 -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굳이 말로써 말을 문제 삼자면 질문 자체에 모순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마음을 닦고 다스리자면 마음이 뭔지를 먼저 알아야 하는데 마음을 알면 수행이 더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곧 부처라고 했다. 부처를 아는데 수행이 따로 필요하겠는가. 게다가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나를 보면 법을 본다”라고 하셨으니 부처를 알면 법을 알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그러니까 수행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은 이거다 저거다 설명하거나 정의하기보 다는 체험하고 깨달아가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음 수행에 앞서 마음이 뭔지, 뭔가 한마디쯤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 수행의 출발점에서 경험하는 마음을 중생의 마음이라고 하고, 마음 수행의 종착 점에서 만나는 마음을 붓다의 마음이라고 이름 붙여보자.

그렇다면 중생의 마음은 무엇이고 붓다의 마음은 무엇인가? 둘은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가? 흔히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중생과 붓다가 본래 하나고 한마음이라고 배웠다. 이는 본질이 같다는 뜻이지 모양이 똑같다는 의미는 아니다. 근본은 같지만 모양과 작 용이 다르다. 즉 중생이 마음을 쓰고 행동하는 것과 붓다가 마음을 쓰고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마음 수행은 중생의 마음 작용을 붓다의 마음 작용으로 전환하는 노 력이고 작업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마음을 닦는다는 것
알고 보면 인간의 몸이나 돼지 몸이나 몸은 같은 몸이고 똑같이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구도 돼지 몸과 인간의 몸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 다. 또 내 몸이나 남의 몸이나 같은 몸이지만 같다고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왜인가? 그건 돼지와 인간의 몸이, 또 너와 나의 몸이 서로 감각하고 지각하고 느 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붓다와 중 생도 마찬가지다. 마음 쓰는 것이 다르다. 즉 감각하고 지각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작용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수행하고 닦는다고 하는 것은 중생의 마음을 붓다의 마 음으로 변형시켜가는 의도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수행은 바로 중생의 마음을 붓다의 마음으로 발전시키고 변형시켜가는 과정이다. 또 다른 말로 수 행은 가짜 나로부터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영어로는 가짜 나,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는 나를 소문자 self로 표기하고 진짜 나는 대문자 Self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행은 작은 self를 큰 Self로 성장·변형시켜가는 노력이고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면 어떻게 작은 나를 큰 나로, 변형시키고 발전시켜갈 수 있을까? 일단 작은 나를 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 작은 나는 가족, 친구,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일상으 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음에 있으니 그 마음을 잘 살피고 알아차리면 된 다. 바로 그렇게 자신의 일상적 느낌, 생각,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자각하고자 노 력하는 것이 수행의 출발이다. 그것이 작은 나를 큰 나로 성장시키고 변형시켜가 는 전제 조건이다. 그냥 느끼는 나, 생각하는 나, 행동하는 나를 주시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잘 볼 수 있을까 ? 답은 간단하다. 언제 자신의 느낌과 생각, 행동이 가장 크고 선명 하게 잘 일어나겠는가? 우리가 언제 감정이 일어나고 생각이 일어나고 행동이 일 어나는가? 그건 인간관계 속에서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온갖 미움과 갈등과 분노와 애착과 사랑이 일어난다. 그때 일어나는 갖가지 마음들을 보고 자각하면 된다. 그것이 전부다. 일단 보고 자각하면 그다음의 단계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마치 배고픔을 인식하고 나면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오감과 의식, 무의식 이 자동적으로 먹을 것을 구하듯이 일단 일어나는 감정을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 감정을 다루는 과정은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다.

사람 속에서 부대끼는 것이 수행
물론 때로는 혼자서 고요히 앉아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고 복잡한 현실을 벗어 나서 자신과 만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얽히고설키는 인간관계 속에서 일 어나는 마음의 반응들을 들여다보고 살피는 일은 더욱 힘들고 가치 있는 수행이다. 이는 마치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와도 같은 것이다. 사람 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자신을 보고 자각할 수만 있다면,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번 뇌와 불안, 갈등, 좌절로 인해서 때로는 스스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 세상이 싫어 지지만 그 속에서 문득 자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그렇게 세상 을 힘들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들을 향해 사랑과 연민을 느낄 수 있다 면, 그것이 진정한 수행의 출발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아가서 이번에는 나의 감정 과 생각과 행동만을 지켜볼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바 라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내 식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경청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비 수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홀로 조용히 앉아서 닦은 마음의 향기가 온실 속에서 피어난 꽃 향기라면 온갖 인간관계 속에서 닦인 마음의 향기는 눈보라 속에서 피어나는 들판의 꽃향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마음 수행은 사람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혼자서 아무리 오랫동안 자 신의 내면을 살피고 닦아도 그것이 인간과 사회관계에서의 인격적 성숙을 돕는 데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데 진정 으로 행복한 삶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돕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또 세상과 인간을 사랑하고 돕기 위해서는 세상과 인간을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그 러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 뒹굴고 부대껴야 한다. 세상과 인간을 등지고 그들을 향한 자비심을 키우기는 힘든 일이다.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도를 닦아도 또 아무리 신비 체험을 많이 했다고 해도 정말 마음이 잘 닦였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수행의 정도나 깨달음의 정도는 반 드시 대상관계, 그 가운데서도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왜냐하면 사람 과 사람이 만날 때, 그때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 또 마음과 물질,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마음의 바다가 미움, 사랑, 분노, 갈등 의 파도로 소용돌이치는 순간, 그때가 바로 중생의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 정신 적·물질적 대상을 만나 미움과 사랑, 집착과 갈등의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문득 그러한 마음의 파도 속에서 그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면 그 것이 깨달음이고 부처의 마음 언저리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수행은 나를 발견하고 주시하는 것
마음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만나고 체험하는 모든 인연들, 문제, 갈등, 고통 자체가 우리를 성장시키고 행복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불보살의 화신들이 다. 왜냐하면 마음이 미움, 사랑, 집착, 갈등으로 출렁이고 파도치지 않으면 마음을 보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마음을 보지 못하면 마음을 닦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갈등하지 않기 위해서 인간과 세상을 멀리한 다면 수행할 수가 없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인연들 속에 서 일어나는 감정, 생각, 행동들을 보고, 극락과 지옥, 아수라, 아귀 등 육도를 하 루에도 수백, 수천, 수만 번 들락거리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주시하고 바라보는 것이 마음 수행이 아닌가 싶다.

마음을 놓치지 않고 주시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 작용에 대한 판단이나 좋아하 고 싫어하는 반응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냥 일어나는 마음 작용을 주시할 뿐, 그 어떤 인위적 잣대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평가하고 판단하는 잣대 자체 가 아(我)상을 살찌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은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리고 주시 하는 작업은 필요하지만,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 더구 나 그것을 고치려고 애쓰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일단 마음의 파도를 보기만 하 면, 그다음 단계는 우리의 불성, 본각, 진여심이 모든 것을 알아서 자동으로 처리 하게 되어 있다.

서광 스님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이후 미국에서 종교심리학 석사와 자아초월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 했다. MSC 한국지부장과 MSC Teacher Trainer이다. 현재 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이며, (사)한국명상심리상담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와 편역서로는 『현대 심리학으로 풀어본 대승기신론』, 『치유하는 유식 읽기』, 『나를 치유하는 마 음 여행』, 『현대 심리학으로 풀어본 유식 30송』, 『돌이키는 힘-치유하는 금강경 읽기』, 『한영불교사전』, 『불교상담심리학 입문』, 『러브 유어셀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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