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가 미래 사회 긍정적 가능성을 높인다|사유와 성찰

이타주의가 미래 사회 

긍정적 가능성을 높인다


최정규 

경북대학교 교수



경쟁의 시대, 남을 위한 마음은 왜 생길까?

타인의 필요를 위해 어떤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채 기꺼이 나의 시간 혹은 물질 등의 자원을 헌신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이타주의(altruism). 경쟁의 시대로 불리는 이때 우리 사회는 그 어떤 자본보다 ‘이타성’이라는 사회적 자본이 가장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많은 거래가 대가와 보상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는 현재, 그 틀을 뛰어넘는 헌신의 거래가 미래 사회의 긍정적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 강연에서 최정규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오늘날 이타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최정규 교수는 “경제통상학부 교수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이타주의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비슷하다. ‘경제학자가 왜 이타주의를 연구하느냐’ 혹은 ‘참 좋은 것 공부하신다’는 반응”이라며 운을 뗐다. 

지금까지 많은 경제학자들은 사회가 원만히 돌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으로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했다. 그러한 시선 중 하나는 현대 사회를 대규모 협력 체계로 간주한 것이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사회는 크고 복잡해졌는데, 이처럼 복잡하고 큰 규모에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조정되는지는 이미 우리 개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 사회가 큰 무리 없이 작동하는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누군가가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즉 ‘대규모 협력 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한 필요충족’, ‘시장의 교리’ 등의 원리가 우리 사회를 작동시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에 근거한 필요충족’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규모 협력이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해 행동한 결과로 작동한다는 내용이에요. 버나드 맨더빌(Bernard Mandeville)은 자신의 도서 『꿀벌의 우화』에서 ‘도덕이란 한편으로는 지배자들의 위선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자들이 신분과 부를 공고히 하기 위해 피지배층에 부과하는 족쇄이자 통치 전략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인간을 바라보는 기본 시선은 ‘유난히 이기적이고 고집 세고 약삭빠른 짐승’이에요. 20세기 가장 위대한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 역시 ‘이타성이란 근대 사회에 걸맞지 않은 낡은 본성이다. 인류는 이 원시적 충동을 버림으로써 확장된 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의견에 의하면 이타주의는 아주 낡아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이타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고요.”


인간, 완전히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존재

최정규 교수는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두 가지 질문을 청중에게 건넸다. 한 가지는 ‘개인의 이익과 도덕은 과연 갈등할까?’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타주의는 과연 낡은 본성일까?’였다. 혹시 고민할 게 아닌 주제로 고민하는 것일 수 있으니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현상과 이론에 무조건 끄덕거리지 말고 물음표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에게 도덕과 이타성은 그저 자연스러운 행위일 수 있으니까요. 다시 한 번 질문할게요. 보다 구체적인 질문입니다. 여러분 각각에게 100만 원이 주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러한 질문에 몇몇 청중들은 ‘여행을 가겠다’,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겠다’,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겠다’ 등의 답변을 했다. 최정규 교수는 “나를 위해 사용하는 욕구, 즉 이기적 만족감을 ‘M’, 남을 위해 사용하는 마음, 즉 이타적 만족감을 ‘Y’라고 해보자. 여기서 이기적 만족감과 이타적 만족감 중 어떤 것이 더 큰가보다 중요한 것은 이타적 만족감의 값이 0이냐 아니냐인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또 하나의 질문을 건넸다. “지금 모두에게 1만 원이 주어진다고 가정한 후, 컴퓨터로 참가자들 중 2명씩 짝을 짓는다고 해봅시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이 가진 1만 원 중 일부를 건넵니다. 상대방에게는 건넨 돈의 3배에 달하는 액수가 전달될 것입니다. 나도 상대방이 내게 준 금액의 3배를 받게 되고요. 여러분은 얼마를 주실 건가요?”

최정규 교수에 따르면 이 게임의 승자는 자신의 이타적 만족감은 0, 상대의 이타적 만족감은 100인 경우다. 그럴 경우 총 4만 원의 액수를 챙겨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상대방이 얼마를 건네든 처음의 돈 1만 원을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이 게임에서 유리하다. “실제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극도의 이기심을 갖고 성공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이러한 방향으로 진화화지 않았습니다. 경북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한 결과 평균 6,170원을 건네는 것으로 나왔어요. 동시에 주지 않고 순차적으로 건넬 때 첫 번째로 주는 사람이, 상대방이 얼마를 줄지 예측할 수 있을수록, 상대와 소통할 수 있을수록 더 많은 돈을 줬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람은 완전히 이기적이지도, 혹은 이타적이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자신만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 결과가 타인의 이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도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정규 교수는 ‘사회적 책임성’ 혹은 ‘도덕 감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쓸수록 강해지는 ‘윤리’라는 근육

이어 최정규 교수는 이타성과 상호성을 구분하고 이타적 행위를 하게 된 이유를 보여주는 몇 가지 가설과 이론을 소개했다. 해당 이론에 대해 공부하기 전 이타성과 상호성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고 갈 필요가 있다. 먼저 ‘이타성’이란 타인에게 이득이 가지만 행위자 자신에게는 희생이 따르는 행동을 하려는 속성을 의미한다. 헌혈과 집단행동, 자원봉사, 식량 공유 등이 바로 그 예다. ‘상호성’이란 자신에게 이득을 준 상대에게는 호의로, 피해를 준 상대에게는 적의로 대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왜 이타적 성향이 남아 있는지에 대한 네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혈연선택가설’, ‘직접상호성가설’, ‘간접상호성가설’, ‘집단선택가설’이에요. ‘혈연선택가설’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사회에서 내가 만나게 될 대부분의 사람이 나와 긴밀한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즉 나와 유전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을 돕는 게 유전자 관점에서 더 유리한 방향이기에 이타주의가 진화한다는 거죠. ‘직접상호성가설’은 오랫동안 볼 사람에게 더 이타적 행동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만 거래할 사람에게는 내 것을 많이 희생할 필요가 없지만 오랫동안 만날 상대방에게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이타적 행동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간접상호성가설’은 평판에 기초해 이타주의가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며 ‘집단선택가설’은 앞으로 살아갈 사회가 혹독한 환경이어서 집단 생존이 불확실한 경우 집단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이타적 행동을 보인다는 가설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설과 이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실생활에서 이타성은 혈연이나 지연을 넘어 생면부지 사람에게까지 적용되잖아요. 그런 점을 간주한다면 어쩌면 이타성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닐 수 있습니다. 위 네 가지 가설을 뛰어넘는 행동일 수 있다는 거죠. 진화가 아닌 우리의 의식적인 노력과 투쟁의 산물일 수 있어요. 때문에 인류 사회에서 이타적 행위는 매우 독특하다고 볼 수 있죠.”

마지막으로 최정규 교수는 사회제도를 제정할 때 사람이 이기적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경우 실제로 사람은 이기적으로 변한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을 이타적 존재로 바라보려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제가 왜 이타성을 연구하시는지 아시겠나요? 제도라는 울타리(fence)는 쳐도 쳐도 끝이 없습니다. 계속 간섭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는 속이 꽉 찬 체더치즈가 아니라 구멍 뚫린 스위스 치즈예요. 그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제도를 뛰어넘는 무엇인 거죠. 잊지 마세요. 윤리라는 근육은 쓸수록 강해집니다.” 


* 이 글은 경북대학교 최정규 교수의 ‘오늘날 이타주의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강연 내용을 취재해 정리한 것이다.

 

취재·글|황정은(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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