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특징과 불교사회인의 사명|지상중계

제15회 원효학술상 수상 기념 강연


불교의 특징과 

불교사회인의 사명

- 대지 지향의 과학기술 시대를 위한 불교 진흥

 

김규칠

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제15회 원효학술상 수상자

문명의 주류 행세해온 종교, 보수와 진보, 좌우 모두 자연의 물화와 대상화, 

지배와 침탈과 남획,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생산 극대화를 확대 심화해

자연을 이용 대상물로 보는가? 아니면 아끼고 보살펴야 할 존재로 여기는가? 역사의 무대에서는 자연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고 써먹고 부려먹는 걸 당연시한 사람들이 주역처럼 행동해왔다. 문명의 주류 행세를 해온 (불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교 그리고 보수와 진보, 좌우가 그들이다. 그들의 이념의 공통점은 ‘자연은 힘 있는 인간이 다스리도록 주어져 있는 대상물’이라는 생각이었다. 토지, 광물과 동식물은 능력 있는 인간에게 그저 주어진 물건이란 것, 먼저 차지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자연은 인간의 노력이나 노동이 있기 전에는 사회적으로는 ‘가치 = 제로(0)’라는 관념이었다. 지구 자연을 다스린다는 생각, 인간의 개입에 의해서만 가치를 발생시킨다는 사고, 이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대지의 자손이고 대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그 대지와 대지가 낳은 중생의 존재를 무시하고 다스리겠다는 태도에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원래 대지는 생명의 산모요 길러주는 원천이며 깃들 터전이었다. 나중에는 돌아가야 할 품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이 절대적 존재나 영원불멸의 세계에 대한 환상 같은 임의적 관념의 조작에 의해 왜곡, 변질되기 시작했다. 특정 종족만의 수호신을 만들며 세력을 키우는 집단화가 대지에 대한 선점적 지배 및 이용 대상물화와 표리관계를 이루며 전개되었다. 또한 그것은 정치·경제·사회적 필요성에 의한 조직화의 진행과 함께 권력에의 의지를 강화하는 과정이었다. 그 방식은 ‘대지 = 생명의 몸과 마음[뫔]’이라는 순수한 야생의 사고를 부정하는 방향이었다. 그것이 신 중심의 종교적 세계관으로, 신의 대리인 - 신의 대리 통치자 체제로 전개되어갔다. 이 체제 정립은 정치적으로는 전제군주 국가에서 근대적 입헌민주국가로 발전되어왔으나, 그 기본 가치관에서는 초기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물로 보고 지배하는 것을 변함없이 유지해왔다. 

이와는 각도를 달리해 고대 그리스의 질료주의적 사물본성론을 비롯해 물질주의 세계관이 나왔으나 그것은 자연의 사물화 대상화 관념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이 사고가 근대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노동가치설 등의 모습을 띠고 체제에 대립하는 반체제 이념으로 발전했다. 이 사상은 기본 관념에 있어서는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물로 보고 지배하는 점에서 마찬가지였다. 이리하여 체제와 반체제 모두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주도권 싸움과 계급적 이해 대립을 격화하며 자연에 대한 포획과 억압, 지배를 공통적으로 확대 심화해왔던 것이다. 지구 자연과의 관계에서 보면 그들의 세계관은 같았다. 자연의 물화와 대상화, 그리하여 지배와 침탈과 남획,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생산 극대화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세계관이었다. 기존의 주류 시스템은 대지의 자연스러운 생성 원리에 반하는 인위적 침탈과 생산 편향 체제란 것이다. 축약하면, ‘생성 프로세스 대 생산 시스템 또는 대지 대 정치·경제화’의 모순이다. 후자의 인위적 체제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권력) 관계의 구조화 작업을 은폐하면서 시작해, 점차 그 기반을 강화하고 노골화해왔다. 이런 점에서는 동양에서도 선진(先秦)을 비롯해 전제왕조 시대부터 오랜 기간 마찬가지였다. 

유사한 세계관과 가치관 위에 세운 ‘종교·정치·경제 결합체’를 지향하며 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세계관과 지배구조에 기반을 둔 체제들 간, 체제와 반체제 국가들 간에 세계적 범위에서 공조 또는 적대적 공생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대세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리고 오늘의 병적 징후로 가득한 문명과 지구환경 위기 및 대량 살상 무기 위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전근대와 근대, 좌우, 진보와 보수의 공통 사항은 자연의 사물화와 이용 극대화, 즉 효율 및 생산 최대화이므로 그 차원에서의 절충이나 실용주의, 제3의 길 등은 ‘생산권력 편향 체제’라는 본질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시도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그 한계와 문제점을 드러내었다. 


지구의 생성·선순환 프로세스와 지배적 생산권력 우선 시스템 사이의 

원초적 모순 존재, 연기적 세계관만이 위기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

고타마 싯다르타의 정신과 사상은 달랐다. 자연을 연기적 ‘둘 아님의 관계’로 받아들이는 차원에서만이 좌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아래에서 연기적 공(空)적 생성변화존재론에 입각해 요약, 정리하며 미래를 전망해본다. 

자연과 생명, 대지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AI 등)의 관계는 ‘둘도 하나도 아니며 끊임없이 그 너머로 생성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동일성 중심의 조직화로 세를 불려가려는 지배 지향의 흐름과, 이런 성향을 벗어나 미세한 분자적 소수의 움직임들이 새로움-되기로 생성 변화하려는 성향이 나뉘며 함께 진행하는 복합적 생성 과정이다. 불교는 이 소수의 새로움-되기 행동 윤리를 중시한다. 중시하지만 고집하고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인류사의 변천 과정을 보면 출발에서부터 근본 문제가 있었다. 즉 지구의 생성·선순환 프로세스와 지배적 생산권력 우선(편향) 시스템 사이의 원초적 모순이 있었다. 이는 동서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심화된 현상이었다. 


생성·선순환 프로세스는 자연과 인간 공동의 건강성 바탕으로 

서로 살려나가는 지속 가능한 활생의 과정

원래 생성·선순환 프로세스는 대지와 생명의 순리에 따른 잠재력 발휘, 즉 자연과 인간 공동의 건강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살려나가는 지속 가능한 활생의 과정이었다. 반면, 생산권력 편향 시스템의 동력은 자연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삼고 포획해 인위적 물질력과 권력을 가능한 한 최대로 생산하고 행사하는 전략이었다. 그리하여 그 전략의 효율적 실행을 구실로 인간의 사회마저도 ‘서열화와 피라미드식 체계’로 구조화했던 것이다. 홍적세 후기 누차의 동식물 대학살과 신석기 농업 및 정주도시화 혁명을 비롯해 몇 단계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인공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재생산과 증식의 최대화 일로는 인간을 포함한 대지와 생태계의 자생력 고갈과 억압과 황폐화 과정이었다. 지금 그 극대화의 임계점에서 생산 위주의 편집증적 시스템과 그를 기반으로 한 문명의 지배력이 대지와 인간을 압도하며 세계의 위기를 만들고 있다. 현재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지와 생명의 원천적 연관 관계에 대한 각성과 그 사회적 실천 행동을 통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연기적 세계관은 대지의 자연순환 원리와 생명성(살아서 자기조직하고 변화 발전하는 역동성)의 ‘둘도 하나도 아닌’ 생성 변화 흐름과 현대 과학기술의 선용을 조화하는 방안이다. 


‘공적 가치 실현 자유경쟁시장’ 열어 시장의 입체적 복합화 이룩하는 방식으로 

재제도화… 활생 지향하는 공익적 목적 가치들에 기여하는 것, 

그것을 위한 과학기술과 재화력의 선순환화

그 첫째 실천 과제는 대지의 자생력과 잠재력 회복을 위한, 지구 자체의 개방적 선순환 및 생성 과정의 되살림이다. 즉 소비의 선순환화, 배출된 물질의 원천 환원 및 재투입 전환이다. 이것은 첨단 과학기술을 지구의 순환 원리에 따른 원칙과 기준에 의해 잘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둘째 과제로 전진해야 한다. 무기력한 중생의 생명성과 진정한 인간 자유의 회복을 위해 자유경쟁 세계에 공익적 공공성 경쟁의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현대적 의미의 대승불교운동, ‘대지와 생명세계의 탈인간중심 공공성 회복 운동’이 필요하다. 이것은 대지의 원천적 지고적 가치에 기초한 홍익인간 이념의 현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요체는 현행의 직접적 자유경쟁시장 제도의 역사성과 법적 안전성 및 효율성을 인정한 기반 위에서 병설적으로 ‘공적 가치 실현 자유경쟁시장’을 여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장의 입체적 복합화를 이룩하는 방식으로 재(再)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해 대지와 온 생명의 잠재력 발휘, 즉 활생을 지향하는 공익적 목적 가치들에 기여하는 것, 그것을 위한 과학기술과 재화력(財貨力)의 선순환화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여기서 공적 가치란 기존 국가 제도상의 공적 임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적극적 의미에서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에 ‘진정 사람다운 삶은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소홀히 되고 있는 부문은 무엇인지 살피는 것,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우선적으로 필요한 공익적 가치가 무엇인지가 중요하다.(공익 가치시장과 관련한 상세는 대한불교진흥원 대원불교 학술총서 『활생문명으로 가는 길』 제3부를 참조 바람) 

공익적 가치시장의 장을 열기 위한 선결 과제는 공익적 목적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공익가치 우선순위목록’의 대강을 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적 논의에 의해 의견을 수렴하고 파악해 계속 진전, 향상시켜가도록 하는 작업이다. 이는 자유로운 선의의 사회공헌 경쟁 마당의 기초를 이룬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으로 공적 가치에의 관심과 열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국민의 잠재 역량을 북돋우며 사회공헌을 촉진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는 경쟁을 넘어 협동과 조화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불교인들 AI 시대의 현대 기술사회를 위기에 처한 대지와 화해시킬 수 있다면 

이 시대의 사명 수행하는 일 될 것

당면한 전 지구시민의 공익적 과제 중 가장 긴급한 과제는 기후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전면적 생태계 붕괴의 결정적 시점(Critical Moment)에 이르기 이전에 전 세계가 탄소 배출을 줄여 지구 온도 상승을 낮추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불교인들이 이에 관한 시급한 실천적 담론 형성을 위해 의견 교환과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광장을 마련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업에 앞장설 수 있다면 현대적 의미의 불교행동학(불교적 의미에서 기쁨과 희망의 계기를 창조할 수 있는 사회변혁의 동력을 이루어내는 작업을 말함)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정신적 문화적 가치의 고양화로 향하는 획기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생태·환경운동의 여러 사회적 문화적 노력들과 함께 뜻을 모아서 AI 시대의 현대 기술사회를 위기에 처한 대지와 화해시킬 수 있다면 이 시대의 사명을 수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서 불교적 의미에서 법고창신의 정신을 발견하며 불교의 현대화, 새로운 불교 진흥의 목표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다. 지금이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발휘할 때이다.  



김규칠|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신문대학원을 수료한 후 국내외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 자진 사직하고 사회개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60~1970년대에 유신체제하에서 학생운동과 대학생수도원 활동을 했다. 이후 경제정의시민운동, 정치문화개혁 및 나라정책개발 활동에 참여했으며, 불교의 현대화와 ‘새 생각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면서 시사토론 진행 등 방송 활동을 했다.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및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산업기술정보원장, 불교방송 사장,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탈정치시대의 새로운 항로』, 『불교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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