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 공양에 담긴 생명

발우 공양에 담긴 생명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딱’ 하는 죽비 소리가 울린다. 모두 죽비 소리에 맞춰 합장을 한 후 발우 덮개를 벗겨 앞에 놓는다. 발건을 왼쪽 무릎 위에 놓는다. 발랑을 풀고 그 뒤를 따라 수저집, 발우와 발건, 그리고 네 개의 발우를 발단 위에 놓는다. 이 모든 과정은 조용히 경건하게 이루어진다. 다시 죽비 소리가 들리고 펼쳐놓은 발우 안으로 음식들을 먹을 만큼 담는다. 죽비 소리가 다시 들리면 오관게를 하고 합장 후 공양을 시작한다. 네 개의 발우에 담긴 음식들을 하나씩 먹기 시작한다. 하나씩 발우를 비운다. 남겨두었던 단무지 한 조각이 청수와 함께 발우들을 돌아다니며 그릇에 붙은 음식들을 씻어낸다. 고춧가루 하나도 삼킬 수 없는 목구멍이 바늘과 같은 아귀를 생각하며 깨끗이 닦아낸다. 그리고 그 물은 앞의 음식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몸으로 들어간다. 다시 한 번 더 물로 헹군, 깨끗해진 발우는 다음 식사를 위해 처음 발우를 펼쳐놓았던 과정을 되밟아 정돈한다. 마지막 헹굼에 들어간 물은 모아 천수물은 아귀를 위한 몫이 되고 아귀가 먹을 수 없는 찌꺼기들은 새나 벌레의 것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하고 있노라면 자연으로부터 전해진 생명이 나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생명의 소중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은 절대적 빈곤 상태, 기본 영양이 충족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배고파서 먹기보다는 맛을 위해 먹고, ‘살이 찌는 것보다 버리는 게 낫다’라는 말, ‘맛은 봤으니까 이제 그만 먹을래’라는 말, ‘맛없어서 버려’와 같은 말들을 듣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야생에 있던 인간은 농사를 짓고 협동을 시작하면서 식량 문제를 끊임없이 극복해왔다. 식량 문제를 극복하는 만큼 인구도 함께 증가했다. 18세기 말 맬서스는 인구론을 통해 기하급수적 인구 증가와 산술적인 식량 생산 증가로 인해 인류가 심각한 문제에 처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2019년 말, 세계 인구는 맬서스가 살던 당시 10억 인구의 8배 가깝게 증가했지만, 사람들은 ‘녹색혁명’을 일궈냈고 풍요로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 풍족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지 않았다. 

유엔이 내놓은 식량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세계 기아 인구는 8억 2,000만 명을 돌파했다. 9명당 1명이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는데 특히 서아프리카는 50%에 가까운 사람들이 굶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 증가도 예상되는데, 유엔은 2050년 세계 인구가 97억 명을 넘을 것이며 이로 인해 식량 수요가 70%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바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생산의 위기이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온도는 약 0.9℃가 상승했는데, 1.5℃가 상승하게 되면 해양수산물의 보고인 산호초의 90%가 사라지고, 1억 명 이상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유엔은 예측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식량의 90%가 나오는 경작지들이 해수면의 상승과 이에 따른 염수 피해 등으로 줄어들고 있고, 바다도 문제가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바다에서는 이산화탄소 증가로 산도가 높아져 많은 물고기의 서식지인 산호가 제대로 생겨나기 어렵게 되었고, 그 결과 물고기 수가 줄어들고, 몸집도 작아지고 있다. 거기에 불법 어업과 남획으로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아, 기후 난민,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의 감소를 보고 있노라면 음식을 정말 소중히 해야 우리가 앞서 말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매해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의 양은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18년 기준으로 음식 쓰레기의 비중이 약 40%에 달했다. 음식은 기후변화의 원인 중 26%를 차지하는데, 우리가 버린 음식들도 이 원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일상에서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상위의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음식 쓰레기 만들지 않기가 있다. 

발우 공양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비었음(空)으로 시작해 비었음으로 끝난다. 비었으나 생명의 순환이 그 안에 있다. 음식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탐욕을 내려놓아야 하고 탐욕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음식 또한 나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 음식이 되기 위해 온 식자재들이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한다. 그 속에 세상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먹는 쌀 한 톨에 들어 있는 습기에는 비가 들어 있고 그 비는 저 멀리 아프리카의 호수일 수 있다. 그래서 남기는 것 없이 쌀 한 톨도 귀히 먹는 마음은 지구 어딘가 누군가에게 생명을 나눠주는 행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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