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 참는다는 것의 의미 울분을 밖으로 폭발하면 심신 건강에 이로운가?|인욕, 참는다는 것의 의미

2025-04-21

울분을 밖으로 폭발하면 

심신 건강에 이로운가? 

 

최훈동

휴앤심명상상담연구소 소장,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겸임교수



화를 어떻게 해야 할까?

분노는 참으면 병이 되고 폭발하면 폭력이 된다. 감정을 억압하는 문화에선 우울증과 화병이 많고, 감정을 표현하는 문화에선 충동 조절 장애가 많다. 화를 참고 억누르면 결국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하게 된다. 그 파장은 자신도 다치고 상대는 물론 주변까지 다친다. 불이 나면 주변으로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개인적 분노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지만 사회적 분노는 오랜 기간 계획하고 준비하고 주변의 동조자들을 세뇌시켜 집단 폭력을 일으키고, 크고 작은 편싸움부터 정쟁과 종파 싸움, 나아가 전쟁까지 일으킨다. 화를 참아서도 안 되고 화를 폭발해서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중도적 해법은 무엇인가?


분노(화)의 양상

임상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화의 종류가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작게는 짜증, 신경질, 미움과 혐오감부터 크게는 증오와 적개심으로 격분을 거쳐 광분까지 이른다. 그런가 하면 유익한 분노인 의로운 분노(의분)도 있고 공적인 분노도 있다. 자신에게 화를 내면 신체적으로 두통, 고혈압, 복통, 위장질환 등 증상들이 나타나 병원에 가도 병명이 나오지 않는가 하면, 천식, 알레르기 피부염 등 면역계 질환들이 생긴다. 정신적으로 불면과 불안, 강박증, 우울증, 화병에 걸리고 알코올에 의존하거나 자해를 수없이 하고 자살까지 시도한다. 타인에게 향할 경우 분노 폭발과 함께 고성과 험악한 얼굴, 기물 파괴, 나아가 주먹질, 무차별 살상까지 이른다. 분노의 신경생리적 기전을 간략히 살펴보면 분노 중추(편도체)에서 외부 자극을 지각해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내고 부신에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아드레날린 등)을 분비하게 한다.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급하게 뛰며 혈관이 팽창해 얼굴이 붉어지고 온몸의 근육은 팽팽히 긴장해 언제든 싸울 수 있게 만든다. 행동의 변화는 얼굴은 붉어지고 동공은 확대되고 눈빛은 살기를 띠고 고함을 지르고 난폭한 말과 욕설을 퍼붓고 책상을 치고 밥상을 차고 물건을 던지고 흉기를 들어 부수고 때린다. 분노는 중독성이 있어서 분노를 폭발하면 일시적으로 화가 감소되어 시원함을 느껴 그 시원함을 맛보려 보다 크게 보다 자주 화를 내게 된다. 상대가 두려워하고 고분고분해지면 더욱 쾌감과 희열을 느껴 습관적으로 화내는 분노 중독자가 된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상대를 탓하고 환경에 책임을 돌리고 교묘한 언사로 미화하기까지 해 자신의 편을 만든다. 자신을 기만하고 주변을 선동하며 주위의 동정을 구하는 한편 범죄를 음모하고 기획하기에 이른다.


분노의 발생 과정

대체로 화가 나는 경우는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을 때,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부당하고 억울함을 느낄 때, 무시당하고 소외감을 느낄 때,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과 존중받지 못할 때, 무관심과 냉대를 받을 때, 견해와 신념 가치관이 충돌할 때 등이다. 분노의 밑에는 바람과 기대가 숨어 있다. 비교해 불만을 갖고 우열을 따져 시비를 일삼는다. 의외로 성직자나 교수직의 부모에게서 문제 학생들, 학교 폭력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 지적인 부모가 너무 엄격하고 기대 수준이 높은 경우 아이는 질식감을 느끼고 두려움에 숨을 참으며 눈치를 보게 되고, 거짓말과 훔치는 습관(도벽)으로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성인이 되어서는 반사회적 행동과 도박과 약물에 탐닉하는 등 방종을 거듭하게 된다. 적절히 해결되지 않은 억압된 분노는 배우자나 자녀, 직장 동료 등 그 대상을 넓혀가게 된다. 분노는 단순히 분노 단독의 감정이 아니다. 배경에는 결핍감이 있어 욕망(소유욕과 지배욕, 명예욕)의 갈구가 있다. 늘 만족을 모르고 더 큰 갈망에 사로잡히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 충족되지 않은 마음의 웅덩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 웅덩이가 메꿔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밖에서 채우려 들고 늘 갈등과 긴장 상태로 자신을 내몰아 자책이나 비난을 일삼게 된다. 


분노의 해악과 해결

‘자신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해악이다’라고 그리스 현자는 설했고,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라고 설파했다. 분노를 잘 알려면 지금 느낌과 감정을 살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 기분이 어떤지, 지금 느낌은 어떤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분노를 억압하거나 회피하면 분노를 터득할 기회가 없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잘 느끼고 이해해야 이를 통해 상대방의 감정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반사회적 폭력 행동에는 이런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붓다도 자신에 대한 무지가 온갖 고통을 일으키니 자신에 대한 명확한 앎과 봄이 필요하다 했다. 모든 행동에는 선행하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의도다. 의도 없는 행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워낙 미세하고 빠르게 지나가 의도 없이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부지불각의 상태일 뿐 의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의도가 선하면 선한 행동이 나오고 악하면 악행이 된다. 그 의도를 살펴 악행의 경중을 판별한 붓다는 신체적(물리적) 악행이 가장 큰 악이라고 주장하는 자이나교도에게 정신적 저주(예, 나치즘)가 온 사회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니 정신적 악행이 신체적 폭력이나 살상 무기보다 오히려 그 영향이 심대하다고 설파한 바 있다. 바르지 못한 견해와 생각은 필연적으로 폭력적 언어와 행동, 삶을 살게 하는 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을 조용히 성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노의 폭발은 통쾌함을 주는 카타르시스 효과가 있으나 그것은 일시적이다. 그렇다고 억누르면 무의식에 저장되어 때가 되면 자신과 타인뿐 아니라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치유되지 않은 분노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지뢰와 같아서 제거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담 치료와 명상 치유가 그것이다. 우선 분노가 일어남을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분노 전 단계에 싫은 느낌을 보아야 하고, 싫은 느낌이 혐오감, 분노로 발전함을 자각해야만 분노에 의한 이차적 연쇄 반응을 중지할 수 있다. 폭발하는 대신 ‘화가 남’을 상대방에게 알려야 한다. 금방 보고 들은 언행으로 불쾌하고 마음 상했음을 알리는 것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가정 폭력(배우자 폭력 아동 학대 등)이 범죄 행위이고 처벌받게 됨을 경고하는 게 폭력 행동을 중단시킨다. 폭력을 방관하거나 덮어버리면 폭력은 점점 더 큰 폭력으로 발전한다. 단순한 인욕은 근본 해결책이 못 된다. 그래서 분노가 일어난 배경을 숙고해보아야 한다. 분노가 일어나는 공통분모가 있는지, 그 최초의 경우는 언제였는지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긴요하다. 기억나지 않은 사건들이 불현듯 떠오르거나 꿈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때의 아픔을 회피하고 두려움으로 억압했음을 깨닫고 당시의 아픔을 안아주고 충분히 공감하는 경험을 통해 치유가 일어난다. 충분한 통찰과 공감(자기 연민)이 일어나면 비로소 상대의 분노 행동 속에 숨은 아픔이 전해져온다. 상대에 대한 연민이 일어나고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희생양임을 깨달으면 용서하게 되고 또한 용서를 빌게 된다. 이렇게 상호 연민에 의해 치유가 완성된다. 


사성제와 팔정도는 현대 정신 치료의 정수

분노는 참고 아닌 척해도 해결되지 않고 울분을 폭발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분노를 잘 성찰해 분노가 일어난 원인과 배경을 낱낱이 자각하고, 분노에 깔려 있는 욕구와 기대를 분명히 보아야 분노를 진정으로 잠재울 수 있다.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 그리고 바른 노력(인욕)으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2,600년 전 제시된 사성제와 팔정도는 현대 정신 치료의 정수와 일치한다. 분노를 만날 때마다 분노의 진원지(상처)를 보아야 한다. 비난이나 자책 대신 마음속 트라우마를 보고 안아주면 ‘분노하고 신음하는 아이’ 대신 평등한 연민의 연꽃이 피어난다.  



최훈동|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수련했다. 한별정신건강병원장을 지냈으며 현재 서울대 초빙교수(정신치료 슈퍼바이저), 휴앤심명상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명상과 상담 안내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내 마음을 안아주는 명상연습』, 『깨달음의 길 숙고명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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