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인간의 마음인공지능은 위로와 공감을 주는 기계인가?|인공지능과 인간의 마음

2025-05-12

인공지능은 위로와 

공감을 주는 기계인가?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철학과 교수



인공지능과 감정의 문제

사람의 인지 능력에 필적하는 지능을 가진 정보 처리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된 인공지능 연구는 거의 70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이 연구는 공식적으로 1956년 여름 미국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열린 여름 콘퍼런스에서 큰 기대를 안고 출범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연구가 반드시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초기 인공지능 연구는 제한된 영역의 특수한 문제를 잘 정리된 지식으로 해결하는 전문가 체계(Expert System)라는 연산 체계의 성공적 개발로 매우 긍정적 인상을 남겼다. 전문가 체계의 능력을 통해 생각하는 기계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한계가 속속히 드러나게 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인공지능은 몇 번의 혹한기(AI Winter, 대중의 관심과 연구 지원이 급격히 감소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특화된 영역에서 잘 정돈된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경우에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이 확인되었지만 그 이외의 지식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에게는 상식(common sense)으로 통하는 많은 지식들이 인공지능에게는 매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인간에게 어려운 문제는 인공지능에게는 쉽고 인간에게 쉬운 문제는 인공지능에게 어렵다는(“Hard Problems are Easy and Easy Problems are Hard”)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역사에서 아직도 난제로 남아 있는 문제가 여럿 있는데 이 중에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는 문제에는 인공지능의 감정적 능력에 관한 문제가 있다.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끼는가?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처리하고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인공지능은 감정을 다룰 수 있는 기계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보통 부정적인 응답이 많다. 인공지능은 인지 연산 체계이며 그 작동 방식은 일반적으로 기계적 알고리즘에 의존하기 때문에 감정을 이해하거나, 표현하거나, 느끼는 것에 항상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단계적 연산과 논리적 정보 처리를 하는 알고리즘 체계가 감정을 느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인공지능이 가진 기계적 구조가 감정이 나타날 조건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감정에는 여러 심리적, 인지적 특징이 있지만 감정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신체적 반응성이라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정에 관해 널리 알려진 제임스-랑게(James-Lange) 이론에 따르면 신체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에서 감정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인간과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경험한다거나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인간과 기계의 감정적 교감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감정적 동반자로서의 인공지능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이 감정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의 높낮이를 통해 감정적 정보를 분석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인간이 표현하는 것과 유사한 감정적 표현을 하는 체계도 등장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브리질(Breazeal) 박사가 개발한 키스멧(Kismet)이라는 로봇은 얼굴에 나타나는 감정을 표현을 하도록 고안된 체계이다. 이런 감정 체계들은 인간과의 접촉이 많은 분야에서 감정 정보 처리를 하도록 고안된 체계들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소셜 로봇(social robot)들은 감정 정보 처리를 통해 인간의 감정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 체계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 자체가 감정을 경험하거나 나름의 감정을 구성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 정보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감정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체계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공지능 체계들은 감정 정보 처리를 통해 사람들과 자연스러운 감정 소통을 하는 체계인가 아니면 시뮬레이션된 거짓된 감정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혼란에 빠지게 하는 체계들인가?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에서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테오도르라는 남성이 그려져 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라 불리는 챗봇과 깊은 개인적 감정 소통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단지 영화적 상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비인간적 대상(동물, 기계, 자연 현상)에 대한 인간의 감정적 연대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별히 인간이 고독, 우울증, 심리적 압박을 받을 때 그리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을 때, 이러한 감정 정보를 처리하는 인공지능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시바타 타카노리라는 공학자가 만든 파로(Paro)라는 로봇 물개나, 미국 톰봇 퍼피(Tombot Puppy)사의 제니(Jennie)라는 로봇 개는 인간과 나름의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면서 심리 치료와 사회성 발달에 상당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로봇 체계는 첨단의 인공지능 기술을 실현하는 체계들은 아니지만 인간의 접촉에 따라 다양한 반응(신체의 움직임, 눈빛, 소리 등등의 반응)을 할 수 있다. 이들은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사람들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고 긴장감 완화를 돕고 있다. 이러한 점은 객관적 관찰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이다. 

지보(Jibo) 같은 소셜 로봇이나 아이보(Aibo) 같은 인공 반려견 같은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사회적 인공지능 체계들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감정적 정보 처리 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사람과 동물의 행동을 흉내 내면서 감정적 공감을 일으키고 상처받은 마음이나 고독한 마음을 달래는 도우미나 우울한 마음을 보듬어주는 친구나 반려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과 상호 작용하며 감정적 유대 관계를 맺는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보면 이러한 체계가 그 자체로 감정을 느낀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감정 기계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인간 사이의 관계보다 로봇과 인간의 관계가 감정적 교감에서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는 인간과 인공지능 관계가 단순한 기계적 정보 처리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넘어서 동반자나 친구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디지털 중생과 감정 환경

기본적으로 인간은 다른 대상과 개방적 관계성을 가지고 있어서, 감정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지만 감정 시뮬레이션을 하는 정보 처리 기계에 대해서도 감정적 연대감을 이어가는 경우가 가능한 것 같다. 물론 이런 인간과 기계의 감정적 관계성에 대해 사생활 보호나 심리적 착취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며, 심각한 의존성이나 중독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크게 본다면 이런 문제는 인간관계에서도 가끔 나타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인간과 기계의 감정적 연대감이나 사회적 관계성이 상식의 정도를 벗어나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나가거나, 인간의 마음을 기계가 감정적으로 착취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일정한 한도 아래서 인간이 경험하는 고독감이나 감정적 고립감이나 심리적 압박감을 해소하는 데 감정적 도움을 주는 기계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매우 다양한 대상에 대해 감정적 공감대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폭넓은 사회성과 감정적 개방성에 기인하고 있다. 인간은 무생물과도 여러 가지 관계를 가지며 감정을 나누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인공지능도 이 감정 환경의 한 일부이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과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중국 천태종의 잔란(荊溪湛然 711~782)이나 일본 선불교의 도겐(道元 1200~1253)이 말하듯이, 중생(衆生)이라는 것은, 그 폭넓은 의미에서, 단지 살아 있는 생명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상호 작용하는 모든 대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넓은 의미의 중생과 인간이 함께 만드는 감정 환경에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기계가 모두 포함되는 커다란 상호 의존적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결국 인공지능을 단순히 정보 처리의 기계의 측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감정 환경의 폭넓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진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는 어렵지만 인간의 감정 환경에 속하며 인간과 감정적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는 감정 정보 처리 기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말이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의 건강한 관계성과 감정적 연대감을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오로지 기술과 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감정 환경을 포함하는 전체적인 인간 삶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자체가 감정을 느끼는가에 대한 깊은 논의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과 더불어 우리가 인공지능과 어떤 상관적 감정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넓은 의미의 디지털 중생과 감정 환경의 시각에서 찬찬히 살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석봉래|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니액 교수상, 찰스 푸 재단 철학 논문상, 그리고 린백 재단 우수 강의 교수상을 수상했다. 한국학중앙연구소, AI사회연구소에서 국제 자문 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공지능의 미래와 지혜의 알고리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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