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의 결혼과 출산대승불교적 관점에서의 결혼과 출산|불교에서는 결혼, 출산을 어떤 의미로 보나

2024-09-16

대승불교적 관점에서의

결혼과 출산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사람으로 태어나 결혼해 아이 낳고 기르는 기적 같은 일이 줄어들고 있다. 왜?

불교에서는 생명체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은 더 어려워서 억겁의 수많은 생에 복을 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법(緣起法)을 공부하고, 사람 생명 발생의 신비를 이해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더 경이로운 연기적 존재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을 포함해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 발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인 인연(因緣)이 얽히고설켜서 하나의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 모여야 한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사물들 가운데 이렇게 생명체가 형성되어 정상적인 성체로 발생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큰 인연이 있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해 부부가 되는 것도 큰 인연이다. 부부가 된 남녀가 결혼 생활 중에 수정란을 만드는 것도 큰 인연이다. 또 수정란이 생겨 아이가 출생하는 것도 큰 인연이다. 수정란 중 8%에서 20%만이 아이로 태어난다고 한다. 수정된 배아의 20~50%만이 엄마 자궁에 착상되고, 착상된 배아의 약 40%만이 엄마 몸 안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출생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커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란 뜻이다. 나는 이 귀한 인연들을 생각하면 감동에 젖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대한민국의 2023년도 합산 출산율이 0.65명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인이 주목할 만큼 유례가 없는 결혼율과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이렇게 감동적인 일이 극도로 줄어들고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아이를 낳고 돌보기 위해서 청년들이 자기 일을 그만둬야 하고, 또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드는 사교육비, 주거비 등이 너무 많이 드는 이유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대승불교 관점에서 본 결혼과 출산

대승불교 관점에서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대승불교에서 ‘대승’은 ‘큰 수레’라는 뜻으로, 더 많은 중생이 깨달음을 얻도록 큰 수레에 태우고 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깨달음은 ‘연기’에 대한 깨달음이고 ‘공’에 대한 깨달음이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스스로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자신 외의 중생도 깨달음을 통해 구원받도록 헌신하는 존재자다. 이런 보살의 마음이 ‘보리심’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융통성 있게 재해석된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해석된 경전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불교는 열려 있는 체계다. 열려 있는 이유가 아마도 붓다 가르침의 가장 기본인 연기법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연기(緣起)’는 ‘모든 것은 오직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 따라 생성·지속·변화·소멸한다’는 것이다. 연기법은 불교가 만난 시대와 역사적 상황에 따라 연기법의 어떤 측면의 모습이 더 선택되고 부각되며 변화해왔다.

남전 불교는 연기를 인과관계로 해석하고, 북전 대승불교는 연기를 비인과적 관계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는 모든 관계를 포괄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무상(無常), 무아(無我), 고(苦)의 삼법인(三法印)도 모두 연기로부터 진화한 개념이다. 그 가운데 무아(無我) 개념은 남전 불교에서는 아공법유(我空法有), 북전 대승불교에서는 아공법공(我空法空)으로 진화했다. 나가르주나(龍樹)는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이 연기하며 생성·지속·변화·소멸해 공할 뿐만 아니라, 연기도 공하다고 한다. 그래서 ‘윤회가 열반’이라고까지 하고, 『대반열반경』에서는 ‘괴로움이 곧 열반’이라고 하는 데까지 진화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를 반복하고, ‘희로애락’이 교차한다. ‘중생들의 세계’는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보면, ‘열반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윤회가 곧 열반’이라는 것이다. 열반은 모든 번뇌의 불길이 꺼진 상태다. 중생들의 윤회하는 삶의 세계에서 집착과 집착으로 인해 생기는 번뇌의 불길은 연기하는 것이고, 공의 관점에서 보면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결국 다 꺼지는 것이다. 집착과 집착으로 인한 번뇌의 불길은 관점에 따라 열반의 세계가 열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윤회의 세계가 지속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옛말은 번뇌와 집착이 있는 윤회의 세계가 바로 열반의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지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제 우리는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윤회하는 중생의 세계로 들어가 보살행을 하게 되는 것을 긍정하는 대승불교의 지혜를 이해하게 된다. 대승불교는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으며, 재가자와 출가자가 교차하는 인간상을 보살이란 이름으로 재구성한다. 일상의 삶과 구도자의 삶은 겹쳐진 세계로 그려진다. 대승불교 주요 경전에서 재가자의 결혼과 출산을 설명하는 구절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재가자의 결혼과 출산 역시 중생계의 윤회하는 일상 삶이고 집착을 일으키고 번뇌의 불길을 일으키는 삶이지만, 대승불교의 공의 관점에서 열반의 세계이고, ‘번뇌가 곧 열반’인 보람된 보살의 삶에 다름 아니다.

젊은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은 부모와 가족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자식이기만 하던 자신들이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은 관계가 늘어나 그 관계로부터 오는 무게와 그 무게로 인한 번뇌와 집착도 늘어난다. 이런 생각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더 주저하게 만드는 조건들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두 배로 되고 아이를 낳아 자녀를 두게 되며 행복도 더 늘어나는 조건들인 것이다. 이런 생각은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더 하고 싶게 만드는 조건들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유마경(維摩經)』은 대승불교에서 재가자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전이다. 이 경에서 유마힐은 재가자로서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이룬 인물이다. 유마힐의 삶은 재가자도 결혼해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며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깨달음을 추구한다. 또 『금강경(金剛經)』에서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속에 머물며, 그들을 돕고 가르침을 펴는 인물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이 자신을 포함해 중생들의 결혼과 출산을 돕는 것도 보살행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다. 보살과 중생들이 부모로서 자녀를 기르고 교육하는 과정에서 자비심과 인내,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자신과 중생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재가자의 결혼과 출산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가정생활을 통해 자비심과 사랑을 실천하고, 자녀에게 연기법을 가르치는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법화경』에서는 특히 보살의 삶을 강조하며, 이는 출가자뿐만 아니라 재가자에게도 적용된다.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출산하고 자녀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깨달음을 실현하는 삶을 권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재가자의 결혼과 출산도 연기의 과정이자 연기를 깨닫는 수행 과정

대승불교 경전들은 재가자의 결혼과 출산도 생활환경과 위치에 따라 발전하고 분화하는 연기의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가정생활을 통해 연기법을 이해하고 자비심을 배우며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다. 대승불교는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에게 연기와 공에 대한 깨달음의 길이 열려 있다.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모든 중생이 다 공하다’는 것을 ‘모든 중생이 공성을 가지고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가자의 결혼과 출산도 연기의 과정이자 연기를 깨닫는 수행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청년들이 결혼하고 출산하게 되는 여러 조건들이 적절하게 만들어지고 충분히 성숙해지면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은 저절로 이루어지며 늘어나게 될 것이다.


김원명|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교학처장, 불교학연구회 편집위원, 철학연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원효의 열반경종요』 공역 주서를 비롯해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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