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사회참여경전에서 보는 불교와 사회참여|불교와 사회참여

2024-11-11

경전에서 보는 

불교와 사회참여

 

이재수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부교수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전에 담겨서 시대와 지역을 건너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승되었다. 8만 4,000 경전이라 할 만큼 수많은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이는 연기적 관계에 있는 세상 사람[bahujana, 世人]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loka, 世間]에서 함께하는 다양한 행위[共業]를 통해 사회적으로 구현되고 살아난다. 경전에 담긴 가르침을 따라 걷는 길은 외길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하는 큰길이다. 

부처님은 『중아함경』에서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法)을 본다며, 연기를 말하고 세상은 사회적 관계에서 존재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연기는 현실의 고통은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조건으로 비롯된 것[緣起]으로, 인간의 주체적인 노력[業]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부처님은 이른바 전도선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길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을 제거하고 그들과 함께하며 진리로 이끌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전도의 길은 승가와 사회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며, 사회적인 활동에서 수행의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회참여를 권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

『유행경』에서는 마가다국의 아사세왕이 밧지국을 치려고 조언을 구했을 때,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七不退法]’을 설해 사회나 국가가 유지, 발전될 수 있는 기강을 밝혔다. 그것은 ① 자주자주 서로 모여 정의를 강론하고, ② 위아래가 화합해 서로 공경하고 순종해 어기지 않으며, ③ 법을 받들어 금기할 바를 알고 제도를 어기지 않고, ④ 비구들이 힘써 많은 스승과 벗들을 보호하고 당연히 존경해 섬기며, ⑤ 바른 생각을 지키고 효도와 공경을 으뜸으로 삼고, ⑥ 청정한 행을 닦아 본능을 그대로 따르지 않으며, ⑦ 남을 우선하고 나를 뒤로해 이름과 이익을 탐하지 않으면 서로 화합해 쇠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행복과 이익을 우선으로 하면서도 탐욕과 소유욕을 충족하는 것보다 서로 나누면서 돕고 함께하는 사회 윤리적 실천이야말로 공존과 번영을 가져오는 길임을 가리키고 있다.

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사회를 그린 용화세계는 평화가 실현된 세상이다. 『미륵대성불경』에서는 “온 세상이 오직 평화로워 도둑의 근심이 없고, 도시나 시골이나 문을 잠글 필요가 없다. 늙고 병드는 데 대한 걱정이나 물, 불로 인한 재앙이 없으며, 전쟁과 굶주림과 독극물의 피해가 없는” 세상을 말하고 있다. 세상은 연기적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탐진치 삼독에 물든 중생들이 살아가며 온통 고통에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가야 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 sahāloka)라고 부른다. 용화세계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깨끗한 세계[淨土]로 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공경하고 서로 화합하여 모든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고 자식이 어버이를 공경하듯, 어미가 아들을 사랑하듯, 언어와 행동이 지극히 겸손”하다고 했다. 용화세계는 탐욕으로 인한 약탈과 살육이 없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세상을 말한다. 아울러 그곳에 사는 중생들은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평등해서 다 같은 마음이고, 그래서 만나면 즐거워해서 착하고 고운 말만 주고받는”(『미륵하생경』) 다면서 서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자비를 실천한다고 했다. 


소유욕에서 벗어난 이상사회

경전에서는 이상사회를 탐욕으로 인한 소유욕에서 해방된 곳으로 그린다. 온갖 금은보화가 땅 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도 주워 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서로 “옛사람들은 이 보배들 때문에 서로 상처를 입히고 죽이며 잡혀가고, 감옥에 갇히는 등 수없는 고생을 하지 않았는가?”라고 『미륵하생경』에서는 이런 보배들을 보고도 기왓장이나 돌처럼 보고 탐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교에서는 사회적 불평등과 모든 악은 탐욕에 뿌리내린 소유욕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기세인본경』을 통해 보면 필요 이상의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악이 출발하고 다툼의 근원이라고 밝혔다. 또한 기본적인 생활 이하의 빈곤이라는 양극단이 도덕적인 비열함으로 이어져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파괴한다고 『전륜성왕수행경』에서는 말한다. 미륵의 세상을 다스리는 통치자는 소유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했다. 

경전을 통해 보면, 물질적인 풍요와 나눔과 베풂이라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 소유욕에서 벗어나며 이상적인 사회가 이룩된다고 했다. 물질적 풍요가 완전한 평등과 평화를 보장하는 충분조건이다. 나아가 중생들의 윤리적 실천에 의해 실현된다. 이러한 평화로운 세상은 바로 중생들의 자비로운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지만, 반드시 미륵의 새 세상은 바로 중생들의 도덕적인 실천과 복덕 위에서 굳건하게 선다고 했다. 바로 중생들의 노력, 즉 사회참여에 의해서 이상적인 사회가 건설된다는 의미이다. 


자비의 주체적인 실천

불교의 진리를 행하는 목표는 자비의 실천이며, 모든 중생의 이익과 안락이다. 즉 고통을 제거하는 자비의 실천에 있다. “모든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푸는데 (잠시라도) 게으른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니, 시방의 모든 대보살들이 중생을 가엾게 여기기 때문에 불도를 행한다”(『묘법연화경』, 「안락행품」)라고 해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불교는 자비로 모든 생명을 보호하라고 가르치며, 일체중생을 해롭게 하지 않고 가엾이 여기는 가르침이라고 『문수사리현보장경』에서 말하고 있다. 이처럼 자비는 불교적 실천[佛道]의 근본이다. 특히 『대지도론』 권27에서는 보살은 중생이 노·병·사를 비롯한 여러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대자비심을 일으켜 고통에서 구제하고자 하며, 그런 후에 무상정등각을 얻고자 발심하는데, 또한 자비의 힘 때문이라고 했다. 

『유마경』에서는 보살이 정토를 구하고자 한다면,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 마음이 청정해짐에 따라 곧 불국토가 청정해진다”고 했다. 정토의 출발은 올곧은 마음[直心]에 의해서 출발한다. 항상 진리와 함께 정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삶에서부터 정토는 건설된다. 이러한 정의의 구현은 반드시 중생들의 공업에 의해서 이룩될 수 있다. 

『승만경』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실천을 말한다. 온갖 고난에 빠진 중생을 이롭게 하고 중생을 올바르게 제도하겠다는 발원을 하는데, 중생의 잘못을 꺾어서 항복시키는 강제적인 수단인 절복(折伏)과 감싸안고 용서해 보살피는 섭수(攝受)를 말한다. 이는 정법이 세상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절대적 명제 위에서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법화경』에서는 보살마하살은 “자비로써 몸을 닦아 부처님의 지혜[佛慧]에 잘 들어갔으며, 큰 지혜[大智]를 통달하여 피안에 이르렀고, 그 명성이 한량없는 세계에 널리 퍼져 무수히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이들이라 했다. 바로 부처님의 세상, 정토를 구현하는 실천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경전을 통해 불교의 사회관을 보면 인간의 실존적 고통은 물론,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된 현실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나아가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 또한 현실 고통의 극복이라는 사성제의 사회적 실천에서 성립한다. 불교의 사회참여는 인류와 일체중생의 고통을 해결하는 길이라 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현실정토, 현세불국토라는 말들은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내고, 경전에서 말하는 큰 흐름은 나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바꾸어야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승보살은 자비의 실천을 통해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깨어 있는 실천가이다. 이들은 현실적인 고통의 사회적 해결과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해탈의 삶, 즉 지혜와 자비를 실천한다. 이러한 사회적 실천이 사회참여이며, 그 큰길은 우리 앞에 있다.  


이재수|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서 응용불교학을 전공하고 2007년 「유비쿼터스 시대의 불교문화콘텐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동국대 전자불전연구소에서 ‘한글대장경 전산화 사업’을 했고, 2012년부터 불교학술원에서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사업’ 등 불교 경전 전산화 사업을 해왔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 부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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